지난 9월 행정자치부가 정부안으로 법률안 하나를 입법예고 했다. 그동안 행정기관에 서류작성 및 제출대행 등 사실업무만을 하던 행정사에게 행정심판 대리권과 정책이나 법제에 대한 자문 등 법률업무 권한까지 주겠다는 행정사법 개정안이다.
그런데 이 법안은 올해 입법 예고된 유일한 정부안이고 법안이 나오기 불과 몇 달 전 몇 명의 전직 장관들과 고위공직자가 공동으로 행정사 사무실을 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안 배경을 두고 의혹이 증폭됐다. 법률업무를 비전문가에게 맡김으로써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고 전·현직 공무원간 합법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줌으로써 행정비리를 조장할 우려가 다분한 위험한 법안이라는 비난도 거세게 일고 있다. 사실 이 법안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첫째, 행정사에게는 법률전문성이 없다. 행정심판은 일반 민원업무와 달리 광의의 '소송'이므로 그 대리에는 법률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행정학개론 등으로 구성된 행정사 시험으로는 법률지식 함양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경력직공무원 시험면제규정에 따라 최근 3년간 행정사자격증 취득자 20만5175명 중 99.5%가 시험을 면제받은 공무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행정사의 법률전문성을 담보할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 그런데도 굳이 법률업무를 행정사에게 맡기려 드는 건 정부가 국민의 권익보호에는 관심도 없다고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개정안은 직업공무원제도의 근간을 흔든다. 일정 경력의 공무원에게 시험면제 혜택을 주면서 거기다 행정사의 권한까지 확대할 경우, 오랜 실무경험을 가진 공무원들이 행정사업계로 줄줄이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전체 국민에 봉사해야 할 책무를 띤 공무원이 사익을 위해 공익을 저버리는 것이 되어 헌법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 국가의 원활한 공무수행을 방해하게 된다.
셋째, 퇴임관료와 재직공무원 간 부정결탁으로 공무원의 청렴성과 기강이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과거 상사로 복종했던 고위관료가 행정사가 되어 합법적 방식으로 부당한 업무처리를 부탁할 경우 과연 거절이 가능하겠는가. 특히 최근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제3자를 통한 부정청탁은 제재대상이 되지만 공익민원으로서 행정사를 통한 업무는 제재 받지 않게 된다. 하필 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이런 개정안이 나온 의도가 의심스럽다.
넷째, 전국 20만 이상 행정사가 선거조직으로 활용돼 정치세력화 할 우려가 있다. 개정안에 따라 '대한행정사회'로 행정사조직이 일원화되고 가입이 강제되면, 전국 행정사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특정 정당, 특히 여권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특정 정치세력의 하부조직이 되어 선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의 판도가 좌우될 위험마저 있다.
다섯째, 개정안은 퇴직관료의 조직적 전관예우를 조장할 게 뻔하다. 지난해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등을 강화한 일명 '관피아방지법' 시행으로 고위관료들의 퇴임 후 대정부 '고급 로비' 활동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여기에 개정안이 시행되면 행정심판 영역까지도 광범위하게 전관예우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개정안은 조직적 로비를 가능케 할 '행정사법인 설립'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행정사법 개정안은 이같이 공직을 부패시키고 전관예우를 조장하며 심지어 정치수단이 될 수도 있는 위헌적 악법이므로 절대 추진돼서는 안 된다. 도대체 이런 법이 어떻게 정부안으로 입법예고가 됐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행정자치부는 더 늦기 전에 국민을 우롱하는 행정사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황용환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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