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스태그플레이션의 역습이 시작될까. 금융위기 이후 물가 상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건 지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헤지펀드 투자자 카일 배스다. 그는 지난 19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출연해 "2017년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해가 되겠지만, 경제성장은 정체될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을 예견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 저성장 상태에서 물가만 오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임금과 부동산 가격, 원자재가가 모두 오르면서 내년 물가가 오를 수 있다며 "내 생각에는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고 전망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을 향해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 8월 블룸버그 라디오 인터뷰에서 "경제 일반이 둔화되고 있고, 엄청난 규모의 불확실성 신호가 산재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는 결국 낮은 생산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디플레이션이 사라지며 인플레이션의 초기 신호가 나타나고 있는데,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의 부진 속에 세계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최근 답보 상태다. 올해 상반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에 그쳤다. 3분기 성장률은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추산 1.9%에 그치며 2%를 하회할 전망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7월 전망치보다 0.6%포인트 낮춘 1.6%로 제시했다.
반면 물가는 오르고 있다. 지난달 평균시급은 연율로 2.6% 상승했고,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2% 상승했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 대비 0.3% 오르며 5개월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Fed의 물가 목표인 2%를 곧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재닛 옐런 Fed 의장이 최근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고압경제'가 실현될 경우, 물가가 향후 3~8% 포인트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를 밀어올리는 건 역시 유가다. 올해 초 배럴당 40달러선에 머물렀던 유가는 최근 50달러선에 안착했다. 연초 대비 15% 가량 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구리 등 금속가격도 최근 강세다.
부동산 값도 오르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의 신규주택판매는 9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영국의 명목 주택가격 지수는 지난 1분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장 버블이 심한 것은 중국으로, 지난 9월 주택가격이 전년 대비 11.2%나 상승하며 5년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성장과 물가가 엇박자를 보이며 세계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Fed도 차일피일 금리인상 시기를 늦추면서, 오는 12월에나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응해야 하는 다른 중앙은행들의 셈법도 덩달아 복잡해지고 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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