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박경리문학상 수상 "김지하 시인의 영향 받아"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현대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응구기 와 시옹오(78)가 2016 박경리문학상 수상 차 19일 한국을 방문했다. 케냐 출신의 응구기 와 시옹오는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아프리카의 문제를 알리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 1순위로 거론됐다. 지난 노벨문학상에서도 그의 수상을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대해 그는 "많은 분들이 상을 받을만하다고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매년 이 순간이 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노벨문학상 발표 날 새벽이 되면 사진기를 든 많은 기자들이 집 앞에 진을 쳤다. 한 번은 발표가 난 이후에 집으로 불러 커피를 주면서 기자들을 위로 해줬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중음악가인 밥 딜런의 수상에 대해 "문학의 폭을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응구기 와 시옹오는 1938년 영국 식민 지배 하의 케냐에서 태어났다. 그가 10대와 20대일 때 케냐에서는 독립운동인 '마우마우 무장봉기(1952~1962)'가 일어났다. 가족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고초를 겪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초창기 작품들에서 당시의 일들이 주요 주제로 등장한다. 이후에도 그는 신식민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고발하고, 민중의 언어와 문화에 뿌리를 둔 작품들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울지마, 아이야', '한 톨의 밀알', '피의 꽃잎들', '십자가 위의 악마' 등이 있다.
이번에 박경리문학상을 받게 된 점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인연덕분에 더욱 특별하게 여겨진다고 밝혔다. 응구기는 1980년에 '십자가 위의 악마'를 쓸 때 고 박경리 선생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응구기는 1976년 영어로 번역된 김지하 시집을 우연히 접했다. 그의 작품에 매료돼 케냐 나이로비대학의 수업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당시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다. 이듬 해인 1977년 그는 신식민체제의 실상을 고발한 풍자극 '결혼은 내가 하고 싶을 한다'를 집필했다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투옥됐다. 종이도 없는 감옥에서 휴지에다 글을 써내려갔다.
"처음으로 케냐어인 기쿠유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때 쓴 작품이 '십자가 위의 악마'다. 감옥에서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특히 작품 '오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역시 감옥에서 작품을 많이 썼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국제사면위원회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뒤 응구기는 미국으로 망명해 예일 대학, 뉴욕대학 등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 활동지를 옮겼지만 그는 오히려 작품을 쓸 때 영어가 아닌 모국어를 선택했다. 제임스 응구기라는 영어 이름도 버렸다. 자신을 "세계 각지의 소외받는 언어들을 위해 투쟁하는 언어전사"라고 소개한 그는 "언어에도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 속에서 다양한 언어가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구기는 22일 오후 4시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리는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나선다. 25일 오후 1시에는 연세대 신촌캠퍼스 장기원국제회의실에서 '케냐와 한국의 문학적 연대'를 주제로 강연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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