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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의 첫사랑 53살의 끝사랑, 그녀의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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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발레리나 알레산드라 페리, 주역으로 첫 내한공연

21살의 첫사랑 53살의 끝사랑, 그녀의 '줄리엣' 연습 중인 알레산드라 페리와 에르만 코르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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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사랑을 위해 죽는다. 그때 나이가 열네 살이다. 갓 피어난 꽃같은 줄리엣은 젊음과 순수, 아름다움 그 자체다. 지금까지 연극, 영화, 뮤지컬, 발레, 오페라 등에서 수없이 많은 줄리엣들이 등장했다 사라졌다. 이탈리아의 발레리나 알레산드라 페리는 스물 한 살이던 1984년에 줄리엣이 됐다.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였던 그는 이 무대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줄리엣의 현신'이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2007년 은퇴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줄리엣을 연기하면서 페리는 전설이 됐다. 마흔네 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2013년 7년 만에 복귀한 페리는 2016년, 다시 줄리엣이 됐다. 올해 나이는 쉰세 살이다.

알레산드라 페리는 이달 2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작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이 준비한 작품이다. 페리는 18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내겐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만으로) 열아홉 살에 한 작품을 다시 하다니 내가 복이 많은가 보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했으며, 항상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페리는 영국 로열발레단(1980~1984년), 아메리칸발레씨어터(1985~2007년), 라 스칼라 발레단(1992~2007년) 등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했다.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페리는 "발레하기 좋은 체격을 가지고 태어난 점은 행복이고 선물"이라면서도 "외적인 체형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무용수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여성인 나를 보여주려고 한다"고 했다.

알레산드라 페리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영국 로열발레단을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키운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1929~1992년)이다. 맥밀란은 고전발레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교와 정해진 양식을 거부했다. 대신 등장인물의 심리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드라마 발레'를 강조한 맥밀란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65년 영국 코벤트가든에서 첫 선을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가 40분 동안 끊이지 않았고 커튼콜을 마흔세 번이나 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가장 잘 살린 공연이라는 평을 받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한국 최초로 맥밀란 재단의 공연권을 획득해 이번 작품을 선보인다. 또 아시아 최초로 재단의 허가를 받아 무대와 의상세트도 직접 제작한다.


21살의 첫사랑 53살의 끝사랑, 그녀의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 3막 (제공 : 유니버설발레단)


페리는 '맥밀란의 뮤즈'로 통한다. 맥밀란은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당시 "이 작품을 발레로 접근하지 말고, 연극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했다. 마을에서 바닥을 청소하는 역을 맡은 무용수에게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을 강조했다. "무대 위의 모든 이가 살아있는 인물이 되어야 하며, 여기서 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게 맥밀란의 주장이었다. 페리는 "말이 없고 조용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말을 던졌다"고 그를 회상했다.


"한 번은 그가 다가오더니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이 한 마디로 줄리엣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깨달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낭만적인 작품이 아니다. 사랑과 증오, 폭력을 표현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도 같은 이야기다. 맥밀란의 사전엔 '예쁘다(pretty)'라는 단어는 없다. '아름다움(beauty)'만이 있다. 맥밀란은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실제 인물이 되기를 원했는데, 동작이나 기술 위주로 연습을 했던 이들에게 이것은 굉장히 큰 도전이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 평생을 바친 발레의 길이지만 50대에 현역 발레리나로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위기를 극복했던 경험이 힘이 됐다.페리는 지난 2007년 "나 자신과 경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은퇴를 결심했다. 그 후로 6년 동안 춤을 추지 않았다. "쉬는 동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안은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내 깨달았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내가 춤추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발레리나가 나에겐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6년의 공백 끝에 "나 자신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은 무대에 섰고, 지금의 큰 공연으로 이어졌다. 그는 "몸은 정신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에 내가 뭘 원하는 지를 확실히 알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는 정신적인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두 아이가 어머니의 춤을 응원해주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 갔다 오더니 '엄마, 다른 사람들이 엄마가 춤을 잘 춘다고 하던데'라더라. (웃으며)엄마가 아무리 유명한 발레리나라 할지라도 아이들에게 엄마는 엄마일 뿐이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수석 무용수 에르만 코르네호(35ㆍ아르헨티나)가 '로미오'로 호흡을 맞춘다. 그는 "이 작품은 엄청난 지구력을 필요로 해서 마지막에서 로미오가 죽을 때 나 역시 정말 죽을 것 같다(웃음)"며 "페리는 음악성이 뛰어나고 섬세해서 디테일 하나하나의 표현도 놓치지 않는다.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53)은 "페리와 나는 동갑이다. 너무나 부럽고, 감동도 받았다. 페리가 주역을 맡아서 하는 첫 내한공연이다. 많은 관객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22~29일) 중 페리와 코르네호는 23일과 26일에 출연한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황혜민과 강미선, 김나은이 '줄리엣' 역을 맡고 이동탁, 막심 차셰고로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로미오' 역을 맡는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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