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남산을 찾은 이들이 자주 찾는 외식 메뉴 중 하나는 돈가스다. 남산 케이블카 인근에 돈가스집들이 모여 있기 때문. 이 가게들의 간판을 보면 1970년대부터 영업을 시작한 전통 있는 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각 업소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메뉴들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지만 한국식 돈가스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한국식 돈가스는 고기가 두툼한 일본식의 돈가스와는 다르다. 고기를 얇게 펴 튀겨낸 '왕돈가스'다. 여기에 김치와 고추를 곁들여 먹는다. 이런 한국식의 돈가스는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됐을까.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튀겨낸 것은 서양음식의 일종인 포크커틀릿을 만드는 방법이다.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도 포크 슈니첼이라고 부르며 즐겨 먹는다. 프랑스의 돈가스 에스칼로프 역시 고기를 얇게 썬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 포크커틀릿이 일본에 들어와 돈가스가 됐다. 1895년 일본서 처음 만들었을 때는 포크커틀릿을 그대로 옮긴 '포크가쓰레쓰'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포크를 한자로 바꾸고 가쓰레쓰를 부르기 쉽게 만들면서 1929년 돈가스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얇은 고기를 소량의 기름에 조리하는 방식은 기존 일본 튀김 요리인 '덴뿌라' 등의 영향을 받아 두툼한 고기를 잠길 정도로 넉넉한 기름에 튀겨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돈가스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0~1940년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쉽지 않았던 시대에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겨 먹는 게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경양식집이 널리 생기기 시작한 1960년대로 보인다. 일본을 거쳐 들어왔지만 경양식집의 돈가스는 포크커틀릿의 조리법을 따라 얇게 튀기는 것이었다. 기름을 많이 써야하고 조리시간도 긴 일본식 돈가스보다 포크커틀릿이 더 만들기 용이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고기를 두드려 넓게 펴면 큰 접시를 가득 채워 더 푸짐해 보였다. 여기에 밥과 김치를 곁들여 비로소 한국식 돈가스가 만들어졌다.
경양식집들이 사라진 지금 한국식 돈가스의 명맥은 기사식당이 잇고 있다. 돈가스가 기사식당의 메뉴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80년대 무렵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기사식당의 한국식 돈가스는 바쁜 기사들을 위해 빨리 조리할 수 있도록 더욱 얇아졌고 밥과 국, 그리고 고추를 곁들이는 모양을 갖춰갔다. 돈가스가 기사들의 인기 메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루 종일 일에 지친 이들에게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돼지고기 등심은 쇠고기에 비해 저렴한데다가 단백질, 비타민, 철분, 칼슘이 풍부하다. 여기에 고추는 비타민과 칼륨 등이 많이 함유돼 있다. 게다가 고추의 캡사이신은 위액의 분비를 촉진하고 단백질의 소화를 도와 돼지고기 튀김 요리를 먹고 운전을 해야 하는 기사들에게는 딱 맞았을 것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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