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인연이 참 묘하기도 하고 느낌이 좋다. 손흥민(24·토트넘 핫스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통산 6호골은 그렇게 참 절묘하게 들어갔다.
묘한 이유 첫 번째는 이고르 아킨페프 CSKA모스크바(30) 골키퍼. 2년 전의 장면이 떠오른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러시아와 조별리그 1차전(1-1무)을 했다. 상대 러시아대표팀 수문장이 아킨페프였다.
아킨페프는 후반 23분 이근호(31·제주 유나이티드)의 먼 거리 중거리슈팅을 처리하려다 어이 없이 공을 놓쳐서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기름손'이 붙었다. 아킨페느는 "러시아 팬들과 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내 실수"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 경기 이후 아킨페프는 불안해졌다. 한 때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75)의 레이더망에도 들었던 실력 있는 골키퍼였지만 그 위상은 떨어졌다.
아픈 기억이 떠올랐을까. 아킨페프는 손흥민의 슈팅에 손으로 막았지만 이번에도 미끄러졌다. 후반 26분 손흥민은 팀 동료 에릭 라멜라(24)가 밀어준 패스를 받아 오른발로 찼다. 손이 공에 닿았지만 공은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기름손이었다. 아킨페프는 뼈아팠고 손흥민은 아킨페프와의 맞대결이 나쁘지 않았다. 아킨페프는 이제 '한국 선수 공포증'이 생길 지도 모른다.
손흥민은 러시아에서 골을 넣어 더 의미가 남달랐다. 손흥민은 이상할 정도로 러시아 원정에 강하다. 남들은 어려워하는 러시아 원정이지만 손흥민은 예외다. 그는 독일 프로축구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뛰던 2014년 11월 5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니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다. 레버쿠젠이 2-1로 이겼다.
이번에도 좋은 이력을 하나 남겼다. 모스크바에서 골을 넣었다. 러시아는 2018년 월드컵이 열리는 곳이다. 그때도 러시아의 낮은 기온과 환경에 맞서 싸워야 한다. 러시아에서 지금 좋은 기억을 쌓아놓으면 대표팀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손흥민은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최근 다섯 경기(정규리그, 챔피언스리그)에서 다섯 골을 넣었다.
토트넘 간판 일선 공격수 해리 케인(23)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에이스 역할을 한다. 특히 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는 최전방에서 뛰어도 잘한다는 사실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 손흥민은 왼쪽 날개로 시작했지만 경기가 진행되면서 최전방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손흥민은 본래 포지션은 왼쪽 날개지만 최전방 공격수로도 곧잘 뛴다. 독일 함부르크SV에서부터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44)도 잘 안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은 9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래서 케인의 공백은 걱정 없다고 했다. 이번에 그 말이 그대로 그라운드에서 증명됐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 때문에 신이 났다. 토트넘은 최근 다섯 경기 중 4승(1패)을 챙겼다. 이 중 3승은 손흥민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의 활약에 행복하다. 그의 골이 팀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손흥민을 여름에 볼프스부르크에 보냈으면 어쩔 뻔했나.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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