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스토리-금수저남자 이생과 함께 떠난 무전여행…거지기생의 깜짝 리사이틀에 놀란 사또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그녀는 금강산과 태백산, 지리산을 거쳐 금성(나주)을 도는 무전여행을 감행한다. 시기는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나이가 들어가는 서른 이후가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여행길의 위험과 고독을 줄여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황진이는 재상의 아들인 이생(李生)을 찍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온다. ‘사람됨이 호방하고도 맑아서 함께 외방에서 놀기를 일삼았’던 친구였다. 말은 멋있게 대접해주고 있지만, 툭 까놓고 보면 방랑기가 좀 있는 부잣집 건달이다. 황진이는 데리고 다니기에는 ‘딱’이라고 생각하고 점잖게 제안을 한다.
“내가 들으니 중국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한 번 금강산 보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하물며 본국에서 자라나 선산(仙山)을 지척에 두고도 그 참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내가 우연히 선랑(仙郞)을 뵙게 되었으니 함께 산을 유람하시지요. 갈건야복(葛巾野服) 차림으로 승경(勝景)을 샅샅이 찾아본 뒤에 돌아오면 즐겁지 않겠습니까.”
이생은 길이 고생스럽겠다 싶어서 하인을 대동하려 했다. 황진이가 말렸다. 여행을 사치스럽게 하면, 그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생은 억센 베옷을 입고 삿갓을 쓰고 양식 보따리를 등짐으로 졌다. 그리고 황진이는 베적삼에 무명치마를 입었고 여승이 쓰는 소나무겨우살이로 만든 모자를 썼다. 대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었다. 그런 차림으로 남녀는 금강산에 들어갔다.
처음엔 차림도 우습고 해서 껄껄거리며 떠났을 것이나, 양식이 떨어지고 신발과 옷이 헤지면서 두 사람은 거지가 다 되었다. 그런데도 황진이는 금강산 곳곳을 하나도 남김없이 봐야 한다면서 누더기 차림으로 강행군을 했다. 마을이 보이면 이생은 걸식(乞食)을 하고 황진이는 아낌없이 몸을 팔았다. 어떤 사람도 이 지저분한 차림의 여자가 대스타 황진이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어느 계곡에서 나오는데, 시냇가의 솔밭에서 선비 열댓명이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며칠 굶주렸던 두 사람은 거기로 다가갔다. 먼저 황진이가 선비들에게 큰 절을 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묻는다. “자네도 술을 마실 줄 아는가?” 그러자 황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잔을 잡은 뒤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노랫 소리가 금강산 자락을 메아리치니 곱고 맑았다.
선비들이 신기하게 생각해서 음식을 권했다. 그러자 진이는 “제가 데리고 다니는 하인이 있사온데 몹시 배가 고플 터이니 남은 것들을 나누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때 뻘쭘히 서있던 이생이 다가와 술과 고기를 먹는다. 이렇게 황진이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면서 산을 돌아다녔다. 아쉬운 것은 ‘박연폭포’를 짓는 그 솜씨로 금강산을 읊은 것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처음엔 금강산만 가려고 했던 것인데 다니다 보니 더 욕심이 생긴다. 남쪽으로 내려와 태백산을 오르고 더욱 내려와 지리산까지 다 돈다. 이 ‘황진이 루트’를 잘 연구해서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싶다. 조선 기생이 이 땅의 산을 헤매며 진정한 자유와 삶의 의미를 모색했던 길이었다.
마을마다 구걸하고 때로는 매춘까지 해가면서 이 최고의 미녀가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태백산과 지리산에서 만난 위험과 감동들 또한 구구절절한 사연이며 감회일 것이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상상에 맡겨야할 뿐이다. 금강산 길에선 이생과 동행을 했는데, 이 남자는 이 거칠고 불안한 여행을 견디지 못했다. 곧 속세로 도망치고 말았다.
황진이는 혼자서 전국을 일주하는 산행을 하고 다녔던 셈이다. 그런데 <성옹지소록>에 이 여행의 끝자락 쯤 되는 듯한 기사가 하나 보인다. 지리산에서 나주로 왔을 때였다. 고을 원이 전라감사를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많은 기생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황진이의 얼굴은 잔뜩 때가 끼어 있었고 옷은 너덜너덜하여 영락없는 거지 행색이었다.
그녀는 감사와 원이 앉은 자리 앞에 나와서 태연스럽게 적삼을 벗어 이를 잡고는 거문고를 받아 연주를 했다. 그리고 노래를 했다. 처음엔 잔뜩 찌푸리고 있던 기생들의 입이 벌어지고, 호기심을 가지고 보던 남자들이 무릎을 쳤다.
"오호, 이곳에서 들어보지 못하던 현금(弦琴, 거문고)이요, 절창이로다."
그날 주연(酒宴)은 거지 기생의 깜짝 리사이틀로 채워졌다.
황진이의 기행(奇行)은 기생 시절에 보여주었던 ‘남자에 대한 경멸’과 자기 식대로 삶을 선택하고자 하는 열망의 연장이었다. 예쁜 여자로서 늙은 관리의 귀여움을 받으며 사는 삶을 팽개치고, 생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품고 떠난 구도의 오딧세이였다. ‘예쁨’을 기반으로 구축해온 자기 삶을 해체한 용기 또한 놀랍지만 그녀가 선택한 고행(苦行)을 당당하게 자기 방식으로 걸어나간 자신감 또한 인상적이다. 황진이는 세상이 말하는 안녕과 행복을 누리지는 않았지만, 조선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여자인지도 모른다.
경상감사 앞에서 적삼을 벗어 이를 잡는 기생 황진이. 인간이 지닌 ‘외형’에 대한 집착을, 이만큼 화끈하게 벗어제친 여인이, 조선 아니라, 대한민국에라도 또 있었으랴?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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