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총수 최소화…정치인 가담 부패범죄·반인륜범죄는 제외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8·15 광복절 특별사면 단행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면 명단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오전 10시에 주재하던 국무회의 시간도 12일 임시국무회의 만큼은 30분 늦췄다. 지난 9일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의결한 사면후보자 명단을 넘겨받고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다방면에서 의견을 접한 후에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치인은 배제한 채 민생·경제사범 위주로 특사를 단행했다. 박 대통령이 평소 주장하던 민생과 경제살리기 차원의 결정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금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국민의 삶의 무게가 무겁다.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전기가 필요한 시기"라고 사면의 필요성을 밝힌데 이어 이날 임시국무회의에서도 "이번에 사면을 받은 분들 모두가 경제살리기를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국가발전에 이바지해달라"고 강조했다.
고민은 경제인 사면을 어느 정도 규모로 단행할 것인가에 있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귀띔이다. 특히 기업총수 사면을 놓고 고심이 컸다. 재계에서는 투자활성화를 이유로 수감중이거나 집행유예인 기업총수의 사면을 요구해왔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전 LIG그룹 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 주요 대상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지난해 수준에서 더 나아가기가 어렵다는 견해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그룹총수의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론이 악화된 게 결정적이었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6527명을 특별사면했는데, 이 가운데 기업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한명 뿐이었다. 대기업 지배주주 혹은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었다.
올해도 이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약과 지난해의 비판 여론을 감안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지병 악화 등으로 사실상 형 집행이 어렵다는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 이재현 회장만 사면대상에 포함됐다.
사면 혹은 복권된 경제인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4명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전날 민생·경제사범에 대해 "통 큰 사면을 해달라는 게 국민들의 기대"라고 건의했지만 전폭적인 수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했다"면서 "그래도 그룹 총수 등 주요 경제인이 일단 대상에 포함된 만큼 '경제살리기 차원의 사면'이라는 의미는 살릴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대신 중소·영세 상공인과 서민 중심으로 사면이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어려움에 처한 서민과 중소·영세상공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조속히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했다"고 민생사범의 사면 범위를 확대한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서민 생계형 보호관찰대상자 임시해제가 925명, 생계형 어업인의 면허 행정제재 감면 대상자가 2375명에 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들이 조속히 사회에 복귀해 생업에 나서도록 해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민생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치인의 부패범죄나 아동학대 같은 반인륜범죄, 음주운전자, 사망사고 야기자, 난폭운전자 등은 사면 대상에서 전면 배제했다. 최근 음주운전과 졸음운전에 따른 사망사고가 잇달아 나타난 게 결정적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교통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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