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하필이면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다. 한번만 도와달라"…김시곤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나"
[아시아경제 문제원 수습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7개 언론단체들은 30일 오후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은 김주언 전 KBS 이사가 김 전 국장에게서 받은 것으로 그동안 각종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사용되긴 했지만 대중에 직접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개된 녹취록에는 지난 2014년 4월21일 오후 9~10시와 30일 오후 10시경 두 사람이 나눈 각각 7분24초, 4분49초 가량의 통화 내용이 담겨있다.
통화에서 이 의원은 김 전 국장에게 "그렇게 과장해서 해경을 몰아가면 일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겠나"며 "이렇게 중요할 땐 극적으로 도와달라"고 말했다. 또 "지금은 제발 좀 봐 달라"고까지 하기도 했다. 김 전 국장은 이에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나"고 대답했다.
이 의원은 "(보도에서) 말만 바꾸면 되니까 녹음을 한번만 더 해 달라"며 "만약 되면 나한테 전화 한 번 주라"고 부탁했다. 심지어는 "하필이면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다. 한번만 도와달라"고 했다. 김 전 국장은 "조직이라는 게 그렇게는 안 된다"면서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답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4월16일로부터 5일밖에 지나지 않아 한창 구조를 해야할 시기에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서 봐달라고 했다"며 "국회가 국정조사를 하고, 대통령에 대한 청문회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정부 수반이 혹은 수반을 보좌하는 사람이 국민 생명보다는 정권의 안위, 그 어린 생명들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경호하려는 사실이 놀랍다"며 "그 이면에서 읽어야 할 것은 공영방송이 청와대 홍보수석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위치로 추락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녹취록을 들은 뒤 "(참사 당시) 대통령부터 나서 모든 책임은 나한테 있고 국가를 개조해서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정작 속으로는 정부는 책임이 없고 설령 있더라도 덮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이젠 배신감 넘어 정말 이 정부를 국민의 정부라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했다.
문제원 수습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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