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23일 오후 서귀포항 남방 3마일 해상에서 항해 중이던 유람선 서귀호 감판 창고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했다. 겁을 먹은 승객 4명이 바다에 투신해 표류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체되면 표류자 모두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긴급한 상황. 마침 인근에 있던 해경 최신예 대형 경비함인 이청호함(5002함)이 탑재 헬기와 단정을 동원해 구조해 나섰다.
이 배는 해경이 보유한 선박 중 가장 최근에 건조돼 헬기 착륙장, 단정 4척을 갖춰 선박의 침몰, 화재, 좌초, 조난 등 모든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기에 즉석 대응이 가능했다. 먼저 팬더 헬기가 호이스트를 이용해 1명을 구조했고, 긴급 출동한 단정 3척이 빠른 속도로 접근해 나머지 3명을 구해냈다. 그러던 중 서귀호에서 발생한 화재가 점점 더 커졌고, 자체 진압이 불가능한 상태로 번지고 말았다. 이청호함은 자체 탑재한 타함소화포(물대포)를 가동해 곧바로 화재를 진압했다. 곧바로 선박에 난 불길이 잡혔고 서귀호와 승객들은 무사히 구출됐다.
이상은 이날 오후 제주 서귀포 강정 민군복합항 인근 해역에서 긴급 상황을 가정해 실시한 이청호함 취역식 기념 훈련이었다. 2002년 취역한 삼봉호함 이후 두 번째로 현역에 투입된 5000t급 대형 경비함 이청호함은 이날 훈련에서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다.
우선 이청호함은 대형 함정답게 기름을 가득 채웠을 경우 미국 로스앤젤리스까지 왕복할 수 있는 대양 항해 능력을 갖췄다. 커다란 선체는 견인선에 이끌려 항구를 벗어나 서귀포항 인근 해역으로 향했는데, 다소 높은 파고에도 불구하고 전혀 선상에서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배에 설치된 4기의 엔진은 각각 7400kw×1325rpm의 출력, 즉 차량 200대가 내는 힘을 한꺼번에 낼 수 있는 힘을 낸다. 1200kw급 발전기 4대가 설치돼 엔진과 함께 평상시 항해에 사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선박으로 건조돼 기름값을 아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선내에 첨단 레이더ㆍ감시 장비와 통신망을 갖추고 있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커버할 수 있는 광역 경비 체제에 적합한 성능을 자랑했다.
중국어선 불법 조업 단속이나 선박의 침몰ㆍ좌초ㆍ화재ㆍ조난 등 모든 해양사고 발생에 대비할 수 있는 장비와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야간에도 상황 파악이 가능하며 원격 조종되는 카메라 33대가 선체 주요 부위에 장착돼 있는 것도 특징이다. 불법조업 어선 검색, 타선 예인 상황, 구난 상황 등을 조타실, 당직실 등에서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강력한 성능의 물대포도 눈에 띈다. 시간당 3600t을 최대 160m까지 발사가능한 물대포 2대가 다른 선박 화재 소화용으로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통신이 가능한 설비와 국제해상조난 및 안전시스템 등 첨단 통신 장비도 갖춰져 있다.
헬기가 수시로 뜨고 내릴 수 있는 착륙장이 있어 수륙 양면에서 입체 작전을 펼칠 수 있고, 14mㆍ10m급 구조정을 갖춰 인명 구조ㆍ범죄 단속에 활용할 수 있기도 하다. 14m 구조정은 12명을 태우고 최대 속력 35노트로 질주할 수 있고, 10m 급은 10명을 태우고 최대 40노트로 달려 각종 임무를 수행한다. 해상ㆍ섬에서 발생한 환자를 육상 병원과 연결해 원격으로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가 가능한 해양응급원격의료시스템도 설치돼 있다.
해경 함정이지만 강력한 무장도 갖췄다. 76mm 오토멜라라 자동포, 40mm 노봉급 자동포, 20mm 발칸포는 소형 해군 함정 못지 않은 무력을 자랑한다.
해경은 이 신예 함정을 오는 28일부터 제주 서남해역에 투입해 이어호 주권 수호ㆍ중국어선 불법 조업 단속에 나선다. 이청호함의 첫 함장인 이재두 총경은 불법 조업 중국어선들에게 '저승사자'로 불리는 백전 노장의 베테랑이다. 그는 목포해경소속 3009함장으로 일하면서 123척의 중국어선을 나포해 벌금 42억4700만원을 징수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해 해경 두 번째 5000t급 함정의 초대 함정이 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이 함장은 "바다에서 한평생을 바쳐왔는데, 이 배를 잘 체계화해서 후배들에게 잘 물려주고 싶다"며 "이어호 주권 수호, 국토 최남단 해상 치안 강화, 중국어선 불법 조업 단속 등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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