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 개인적으로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정보기술(IT) 강국'이란 말이다. 이 말은 과거 정부 주도로 전국적인 초고속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휴대폰이 급속도로 보급되던 시기부터 사용됐다.
지금도 한국의 IT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지만 이를 두고 한국을 IT 강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IT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것과 경쟁력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 장비의 대부분도 노키아, 에릭슨, 알카텔루슨트, 시스코 등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IT 강국 코리아가 얼마나 허상인지는 세계 IT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 기업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삼성전자도 중국 기업이 빠르게 쫓아오면서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다. 스마트폰의 핵심인 운영체제(OS)는 구글이 장악하고 있고 삼성이 그토록 자랑하던 하드웨어(HW)의 경쟁력은 중국에 역전당하기 일보 직전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IT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HW가 아닌 소프트웨어(SW)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으나 우리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는 반문하고 싶다. 삼성전자가 최근 사내방송을 통해 구글에 비해 뒤처진 SW 실력을 통렬히 반성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SW 경쟁력은 단순히 코딩 기술을 익힌다고 쌓이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조직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매일 매일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IT 소식을 접하다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해외 IT 기업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기업, 국민들이 'IT 강국'이라는 허명속에서 너무나 안이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해외 기업들과는 대조적으로 국내의 상황은 집안 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헐뜯고 발목을 붙잡으려 하고 올가미를 씌우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해외 기업들은 날고 있는데도 말이다.
가까운 예로 얼마 전 참여연대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기간통신사업자가 통신기기 제조업을 겸업할 경우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한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참여연대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SK텔레콤만 단말기 제조에 따른 이득을 가져가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폈다.
만약 참여연대가 해외 IT 기업들의 최근 움직임을 좀 더 관심있게 지켜봤다면 이러한 목소리는 내지 못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되고 글로벌 플랫폼 경쟁이 뜨거운 시대에 90년대 규제를 고집해야 되겠는가.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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