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바둑에서는 두 집 이상을 내지 못하면 돌들이 죽는다. 이어진 돌들이 커진 ‘대마(大馬)’는 아무래도 이 곳 저 곳에서 집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좀체로 죽지 않는다. 그래서 ‘대마불사’다. 절대 안 죽는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방심하다가 대마가 죽으면 그 바둑은 요새 말로 ‘폭망’이다. 내기라도 걸었다면 지갑이 탈탈 털릴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격랑 속에서 ‘대마불사’가 자주 언급된다. 그 중심에 대우조선해양이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손실 규모는 3조3000억원에 이르고 밥줄인 수주는 최근 거의 끊어졌다. 지난해 10월 산업은행이 4조2000억원의 지원책을 발표하고 실제로 3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투자 부적격이다.
이처럼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기업인데도 대부분 은행들은 대우조선 채권을 ‘정상’으로 분류해 왔다. 돈을 떼일 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미리 충당금을 쌓아놓는 기본 원칙의 예외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대우조선 지분 49.7%를 가진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은행들이 쉽사리 등급을 낮추기 어렵다는게 금융권의 일반적 시각이다.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기도 하다.
산업은행 입장에서 대우조선의 등급을 낮추면 엄청난 규모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지원을 하고 있으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식으로, 어떻게든 살아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물론 대우조선의 허리띠는 죌 수 있는만큼 죌 것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부실의 책임을 져야할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이므로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만에하나 회사가 잘못된다면 손실이 엄청날 것이다. 1만2000명이 넘는 직원들과 수많은 하청업체들,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하면 대우조선을 법정관리로 가져가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상황은 지극히 암울하다. 저유가는 지속되고 있으며 중국의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동력이 약화된 상태다. 경기 사이클은 무너졌으며 저성장 국면으로의 대전환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많이 나온다. 기다리다보면 경기가 나아지고 선박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는 희망사항일 뿐 근거가 박약하다.
대우조선을 청산하지 않는다면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물론 덩치는 확 쪼그라들 것이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산업은행이 아닌 법원의 관리를 무조건 저어할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위기가 깊어지면 선수 교체가 필요하지 않겠는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지원을 해야할 지 알 수 없다. 법정관리로 가게 된 STX조선이 남긴 교훈은 적절한 타이밍에 과감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대마불사는 매우 위험하다. "설마 죽겠어" 하며 계속 돌을 연결시키다가 실제로 죽으면 감당이 안 된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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