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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한국 대학, 종말을 맞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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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한국 대학, 종말을 맞이하는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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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난 자는 반드시 소멸한다는 불교 용어다. 이 말은 생명이 아닌 기업이나 정부 조직에도 해당한다.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은 생물처럼 생로병사를 거쳐 사멸해 간다. 로마 제국은 천 년을 유지했지만 콜로세움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혁신기업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미국 기업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라는 혁신의 물결에 휩쓸려 소멸했다.


최고의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 역시 생자필멸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근대 대학의 기원은 12세기경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과 프랑스의 파리대학에 있다. 볼로냐대학은 11세기 이래 로마법의 권위자인 일네리우스를 비롯한 많은 법학자들이 열었던 개인학교에 모인 학생들의 길드에 기원한다. 이에 반해 파리대학은 파리 주변의 성당이나 수도원 부속학교에서 강의하던 교사들이 결집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볼로냐대학은 학생이 교수를 고용하는 형태로, 파리대학은 교수가 학생을 모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특히 볼로냐대학은 지금의 교수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만한 교칙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무단으로 수업을 휴강해서는 안 된다' '학생 길드에 통고하지 않고 도시를 나가서는 안 된다' 는 등 교수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그 후 학생이 교수를 고용하는 형태는 사라졌지만 대학의 탄생 이후 천 년이 지난 지금 대학의 존재를 위협하는 위기가 시작되고 있다.


위기는 두 개의 진원에서 오고 있다. 하나는 IT와 교육의 결합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진화의 가속화이다. IT와 교육 결합의 대표적인 형태가 온라인 강의인 무크(MOOC)이다. 이를 두고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지진'으로, 헤네시 스탠퍼드대 총장은 '쓰나미'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 라파엘 라이프 MIT 총장은 '교육에서 종이 이후 가장 중요한 혁신'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무크는 점차적으로 한국 대학의 교육 과정을 잠식할 것이다.

글로벌 무크는 한국어라는 언어 장벽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대학 과정 중 먼저 교양과정을 파괴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등의 명강의가 AI에 의한 자동번역을 통해 전달되면 그 순간 대부분의 국내 교양 과정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다음 타깃은 전공 영역이 될 것이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경영학 강의가 무크로 제공되면 국내의 경영학 교육은 초토화될 것이다. 하버드대의 저명한 마이클 포터 교수와 내가 동시에 전략론 강의를 개설할 때 학생들이 누구의 강의를 선택할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마침내 삼성전자나 네이버가 입사 자격에서 미국의 무크 과정을 인정하게 된다면 한국 대학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또 하나의 위기는 사회 진화의 가속화에서 온다. 예를 들어 한국 대학과 기업의 관계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역전되었다. 그 이전에는 대학이 기업을 견인하는 관계였다면 그 이후는 대학이 기업에 끌려가는 형태가 되었다. 특히 온라인게임이나 IT와 같은 혁신 분야에서 그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첨단지식은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창출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사회가 과업수행형 인간이 아닌 문제해결형 인간, 나아가 문제를 발굴하고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창의적 인간을 요구하는 데 반해 대학은 여전히 20세기 초 찰리 채플린 시대에나 걸맞은 과업수행형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이 위기인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러한 급진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 있다. 대학 교수들은 균질화되어 여러 배경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이질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 더구나 지난 10여 년간 대학평가라는 미명하에 진행되어 온 대학의 서열화는 별 의미 없는 논문의 대량생산을 강요했고, 그 과정에서 교수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은 말살되어 왔다. 대학사회가 냉소와 무관심, 다른 전공 교수들과의 협력이 단절되어 있는데 어디서 융합을 하고, 혁신을 하겠는가.


내가 20년 후 다시 대학 교정을 찾을 때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두려울 뿐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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