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한 젊은이가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비명에 죽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아끼려고 가지고 다닌 컵라면은 채 먹어보지도 못하고,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한 죄밖에 없는데 그렇게 김군은 죽어야 했다. 이 나라에 언젠가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런 황당한 죽음의 잔치에 우리 모두는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의 죽음 이후 서서히 드러나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무책임이 어디까지 왔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의 정경유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스크린도어 설치 유지 보수 등은 민간투자 대상 사업에 속하지 않는다는 중앙정부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생법인인 유진메트로의 민자사업 제안을 받아들여 불법적으로 장기에 걸친 특혜성 계약을 체결했다. 시민 안전에 치명적인 스크린도어의 설치와 운영이 이윤만을 노리는 민간업자에게 넘어가면서 비용 절감을 위한 온갖 편법이 판을 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구의역은 서울메트로의 관할 구역으로, 스크린도어의 정비 관리는 은성PSD가 맡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고의 원인이 부족한 정비 인력, 저임금 계약직 채용, 2인1조 매뉴얼 무시 등에 있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안전보다는 이윤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무책임한 민간업자와 그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소홀히 한 서울메트로의 무책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점에서 무책임했는가? 이번 사건이 식사할 시간도 보장하지 않고 일을 시킨 심각한 인권 침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국제적으로 확립된 노동 관행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명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지침 (ISO26000)'에 근거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사회적 책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안전한 고용(secure employment)'의 책임이 있다. 이는 비정규직 같은 일시적 고용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공급망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착취의 혜택을 누려서는 안 된다. 서울메트로는 운영비 절감을 위해 은성PSD의 저임금과 노동착취를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셋째, 임금과 근로조건은 일과 생활의 균형, 가족에 대한 책임을 보장하는 수준의 조건(decent conditions of work)을 충족해야 한다. 끼니를 굶을 정도의 근로조건은 명백히 거부되어야 한다. 넷째, 위험의 제거, 보완, 엔지니어링 제어, 행정 관리, 업무 절차, 보호 장치 등과 같은 관리 체계를 포함해 보건안전 관리원칙을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서울메트로와 은성PSD는 이들 책임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킨 게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책임은 노동자에 대해서는 ILO 최소기준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기업에게는 무제한적인 규제 완화를 허용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편파성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공평하고 정당한 대우를 보장할 정부의 일차적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암담한 사실은 이처럼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기업과 정부의 태도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며칠 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발표한 국가경쟁력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2012년 조사 대상 61개 나라 중 22위에서 2016년 29위로 계속해서 추락했는데,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동 관행, 감사와 회계, 경영자 신뢰도 등 경영 관행에서 61개 나라 중 최하위에 속해 있다. 한 마디로 기업의 무책임이 기업 자신의 경쟁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ISO26000이 말하고 있듯이, 노동은 상품이 아니고, 노동자는 생산 요소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노동자는 바로 세상의 주인으로서 이 땅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노동자며 소비자이고 동시에 기업의 주식을 사는 투자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구의역 사고는 단순히 한 노동자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무책임한 기업과 정부가 저지른 범죄이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김군 하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이다.
끝으로,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사고 없는 저 하늘에서 영면하시길!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