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활 걸린 신산업 육성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올 초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바둑대결은 한 때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던 인공지능(AI)이 어느새 우리 생활 가까이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백화점에서 상품을 판매하고 드론 택배 배송이 일상화될 날도 머지않았다. 바이오기술을 접목한 첨단 헬스케어 기기는 100세 시대를 넘어 200세 시대를 꿈꾸게 하고 있다.
AI와 로봇,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디바이스, 바이오 생명과학 등은 전 세계가 준비중인 4차 산업혁명의 화두다. 기존 제조업에 신기술을 융합해 생산능력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을 한 4차 산업혁명에서 'IT강국' 한국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조선,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을 먹여살려온 주력산업의 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인 신산업을 향한 길은 먼 셈이다. 이대로라면 저성장시대의 생존위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무엇이 신산업인가…한국형 4차 산업혁명은?=박근혜정부는 올 초 신산업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개선한 데 이어, 연말까지 민간기업과 함께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중심으로 미래 신산업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게임체인저가 되기 위해 이미 발 빠르게 움직여온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일례로 2013년 기준 국내 인공지능 시장 규모는 3조6000억원 상당으로, 세계 인공지능 시장 규모의 1.5%에 불과하다. 또 국내 3D프린터 시장 규모는 지난해 800억원으로 매년 20%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지만, 6조원을 웃도는 세계 시장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산업을 육성하고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기존 제조업 중심의 전략에서 핵심 부품소재, 콘텐츠, 소프트웨어(SW), 서비스 등으로 산업 구조를 바꾸고, 바이오ㆍ미래차ㆍ로봇 등 미래 신산업을 적극 육성해 저성장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주목하는 신산업은 4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신산업은 '게임 체인저'로 기존 산업을 통째로 바꾸면서 다른 산업에 파급 효과가 크고, 네트워크로 한번 구축되면 사용자 추가에 대한 비용이 거의 없어야 한다"며 "한류와 의약, 생명공학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고 기존의 반도체 등 기술에 서비스와 문화를 융합해 고급화할 수 있는 부문"이라고 정의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 기술 9개로 ▲빅데이터와 분석 ▲자동화 로봇 ▲시뮬레이션 ▲수평ㆍ수직적 소프트웨어 통합 ▲산업인터넷 ▲사이버 보안 ▲클라우드 ▲3D 프린팅 등 적층 가공 ▲증강현실을 꼽았다. 현재 정부와 기업이 주시하는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3D프린터, IoT, 빅데이터, 웨어러블 디바이스, 로봇과 같은 신산업 분야는 아직 기술개발 중이거나 초기시장 형성단계에 있지만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으로 꼽힌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전 세계 인공지능 시장 규모가 지난해 2억 달러에서 2024년에는 111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D프린터 시장은 오는 2025년 이후 12조원대 선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 규모은 2013년 약 50억달러에서 2018년에는 약 303억달러로 연평균 43.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IoT 시장 규모는 2014년 6600억달러에서 2020년 1조70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산됐다.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태양광대여, 친환경에너지타운, 에너지자립섬 등 에너지 신산업 8대 부문도 정부가 주목하는 신산업이다. 연초 정부는 2030년까지 에너지신산업 시장규모를 100조원까지 키우고 이를 통해 5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바이오 생명과학 또한 질병, 식량난, 환경오염 등 인류의 난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부분이다.
◆두 발 늦은 한국…규제개선이 관건=민간 주도로 신산업을 육성시키겠다는 정부의 움직임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앞서 우리나라는 10여년 전부터 정부 주도로 지능형 로봇, 미래차 등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을 선정하고 미래 먹거리 찾기에 나섰으나, 늘어난 연구개발비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모방 기술혁신 한계, 후발국의 기술추격 등으로 인해 신기술을 앞세운 선진국과 대대적 투자에 나선 중국 등 신흥국 사이에 '신(新) 넛 크래커'가 됐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미국, 중국, 일본, 중국 등은 미래형 자동차, 산업용 무인기, 지능형 로봇,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의 분야에서 이미 우리나라를 훨씬 앞질러가고 있다.
유럽은 2020년까지 바이오, 에너지 등 신사업 R&D에 800억유로를 투입하기로 했고, 미국은 에너지 효율향상ㆍ첨단 자동차 등 11개 신산업을 국가과제로 정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05'를 통해 차세대IT, 신소재, 바이오 등을 10대 미래 신산업으로 선정해 집중 지원 중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 관계자는 "신기술 각각의 요소보다 그 조합이 만들어낼 임팩트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은 개별기업과 산업, 정부 3대 주체가 함께 견인해 나갈 과제임을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산업의 갈라파고스화를 초래하는 중앙집중식 통제의 패러다임에서 개방과 공유의 패러다임으로 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초기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에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연구개발 사업 등 공공부문의 선도적인 R&D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신산업의 성공 키는 정부의 규제혁파에 달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간 업계 주도로 형성된 신산업 시장마저도 규제에 발목이 잡혀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초 정부가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내용의 신산업 규제개선 대책을 내놓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규제에 대한 정부의 패러다임 전환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 낼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현재의 틀 안에서 안주하려 한다면 우리 경제에 미래는 없다"며 "발상의 전환과 과감한 접근으로 산업개혁을 추진해 한국의 미래 30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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