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35%를 육박하는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던 태후는 처음부터 중국 시장을 겨냥해 제작된 드라마로 '중국판유튜브'로 불리는 아이치이(愛奇藝)를 통해 한 회당 수억 뷰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말 그대로'메가톤급 인기'를 구가했다. 태후 현상의 신기록 행진도 놀라웠지만 우리는 또 한가지 낯선 대목을 접하게 된다. 바로 14억 중국인들의 '태후' 시청 방법이다. 중국 팬들은 더 이상 안방 TV 앞에 앉아 송중기와 송혜교를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스마트폰과 PC 등 자신만의 공간에 '태후'를 초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OTT(Over The Top,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미디어 서비스)'라는 미디어 플랫폼은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방송ㆍ미디어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국내 지상파 사업자가 제작한 한류 콘텐츠는 이제 한국과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방영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방송ㆍ미디어 산업의 틀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미디어 소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태후 인기를 등에 업은 아이치이는 유료가입자가 50% 이상 급증했고, 이로써 OTT는 중국 사회의 미디어 소비의 메인 플랫폼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무대에서도 OTT는 2007년 넷플릭스가 등장한 이후 수십 개의 유사 서비스가 출연하여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으며, 기존 유료방송 서비스(IPTV+CATV 등)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이처럼 오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 소비 방식은 사실상 서비스의 국경과 국적을 붕괴시키고 있다. 태후는 상당부분의 제작 자본을 중국으로부터 유치했고, 중국시장 누적 조회수가 20억을 넘었다고 하니, '태후'의 한국 시청률 대박 자축은 오히려 초라해 지는 느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내 방송ㆍ미디어 시장도 이미 글로벌화됐고, '한류'라는 검증된 콘텐츠를 보유한 우리나라는 지금이야 말로 초부가가치의 미래 산업을 선점할 수 있는 '천우신조'의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재 국내 방송ㆍ미디어 산업의 영역에서 진행되는 논쟁들은 마치 구한말 '개화 논쟁'을 보는 듯 소모적이며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해 보인다. CJ그룹이 한류ㆍ콘텐츠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SK텔레콤과 M&A 를 추진한 것은 합리적이며 적절한 경영전략이다. CJE&M이라는 걸출한 콘텐츠 능력을 보유한 기업집단이 규제와 갈등으로 점철된 유료방송산업에 잔류하기에는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상파사업자와의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고, 포화된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IPTV와 경쟁하기에는 투자 대비 성장가치가 턱없이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미디어ㆍ방송 플랫폼인 OTT의 등장과 성장은 CJ에게 '케이블 TV 매각'이라는 결단에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이번 M&A는 기업의 자발적ㆍ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 및 최근 국회를 어렵게 통과한 '기업활력 제고법'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번 M&A를 두고 특별한 이유 없이 심사기간을 연일 갱신하는 등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앞서 강조하였듯이 방송 미디어 시장의 무대가 글로벌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규제기관의 관성은 국내시장 상황에만 매몰되어 메가 트렌드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방송ㆍ미디어 시장의 불확실 상태가 장기간 방치된다면, 한류 콘텐츠 육성은 고사하고, 케이블 TV 산업의 경영악화까지 초래되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미디어 강국'의 꿈은 또 다시 저만치 멀어질 것이다.
글로벌 방송ㆍ미디어 시장은 마치 19세기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처럼 거대 자본들과 초대형 해외 미디어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살아남아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신속한 판단과 과감한 투자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제2의 '강남스타일', 제2의 '태양의 후예'를 원한다면 정부와 업계는 우물 안에 고정된 시선을 들어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에 주목하기 바란다.
곽은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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