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 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이 8일 오전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흰색 카디건과 검은색 바지, 뿔테 안경을 쓴 다소 수수한 차림이었다. 그녀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청사 안으로 향했다. '해운 여제'라는 한때 명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회사의 대모(God mother)와 같은 역할을 하겠다." 2008년 2월14일, 남편 유고로 한진해운 회장에 오른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최은영 회장은 '회장' 대신 '대모'를 자처했다. 2006년 남편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타계로 황망하게 경영일선에 뛰어든 지 2년 만이다.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불리던 해운업계에서 여성 수장 자리에 오른 그녀는 산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해운 여제라는 타이틀과 함께 미망인의 해운 경영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경영 성과' 보다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중시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임직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직원들에게 초콜릿을 직접 나눠줬고, 명절 전에는 임신한 직원들을 모아 점심을 하며 격려하며 '대모 리더십'이 통하는 듯 했다.
하지만 경영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지속된 글로벌 해운업 불황 속 운임은 호황기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호황기 때 비싸게 장기 계약한 용선료로 인한 누적 손실로 경영 상태는 악화됐다. 용선료가 매출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가량으로 운임을 받아도 운항비와 용선료를 더하면 남는 게 없었다.
결국 2014년 최은영 회장은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이미 회사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였다. 경영 부실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은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로 손실을 피했다는 혐의로 먹튀 논란에까지 휩싸였다.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해운 여제로 주목받던 그녀가 실패한 여성 경영인으로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최은영 회장 일가는 이번 주식 처분으로 최소 5억원 이상의 손실을 회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회장 일가가 주식을 처분한 날 주가가 장중 하한가(29.94%) 1825원까지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손실 회피액은 더욱 크다. 앞으로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되지만 검찰에 소환되는 순간 그녀의 해운 여제 흔적은 퇴색되고 말았다. 여성 리더가 귀한 대한민국에서 '여성 리더십의 몰락'이라는 상처를 남긴 것도 뼈아프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