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보다 왜 일찍 죽을까요. 남자가 키도 크고 힘도 세고 더 단단한데, 그리고 아직도 세상은 대체로 남자들이 거머쥐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더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럴듯한 대답들을 해줍니다. "약한 것이 강한 거야. 약하게 보이는 것이 더욱 생명력이 강인하고 집요한 법이라구." 이런 다소 철학적인 듯한 해석을 내리는 분이 있는가하면, "여자는 작고 힘이 약하지만, 많이 움직이기 때문이라구요. 사소한 몸놀림이 남자보다 여자가 더많기 때문에, 신진대사가 더활발해서 여자가 오래 사는 것이라구요."라고 생물학적인 분석을 내놓는 사람도 있고, "여자는 아기를 낳느라고 너무나 고생을 하잖아요? 그래서 하느님이 고생했다고, 좀 더 수명을 주신거지요. 말하자면 하느님의 총애를 좀 더 받는거지요. 안 그래요?"라고 여성에 대한 우월감을 넌지시 내비치는 종교적 접근도 있으며, "여성은 한 달에 한번씩 피를 밖으로 내보내잖아요? 그러니까 혈액순환이 좋아지게 되겠지요. 그런 점이 남성보다 내부기능들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비결일 겁니다."라는 그럴둣한 생각도 있는가 하면, "아무래도 남자가 일찍 죽는 것은 스트레스 때문일 거예요. 돈벌랴 가정돌보랴 직장 상사 눈치보랴 어쩌다 잘못해 잘릴까봐 제때 방귀도 못뀌는 심정으로 한 세상 살아가니 어찌 오래 살겠어요? 거기다가 일반적으로 공부도 많이 해야죠. 육체노동을 해도, 여자들보다는 더 심하게 하잖아요? 또 생존하는 방법이 천상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잖아요? 맨날 걱정투성이이니 사는게 힘들겠죠? 여자는 남자 하나 대충 잘 만나 살면, 편하게 살수도 있고…" 뭐 이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분석론도 나옵니다.
하지만 제가 귀가 엷어서 그런지, 이 얘기를 들으면 그게 옳은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또 다른 귀가 번쩍 뜨이니, 그 모두가 복합적인 원인 같기도 하고, 또 사실은 그 모두가 조금씩 틀린 답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더군요.
그러던 차에 제가 어떤 책을 읽었지요. (딜만의 "생체시계" 서운관) 소련의 생체의학자인 이분은 제가 들은 얘기 중에 가장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더군요. 그 방면에서 전문가이서 그렇겠지만, 내용도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있게 전개해서, 제 맘에 쏙 들었지요. 그럼 그분의 얘기를 엿보기로 할까요?
아시다시피 남자와 여자는 똑같이 성관계에 동참하고 있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해서 똑같은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아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할 때, 유전정보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야 평등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생식시스템의 기능은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자는 주기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남자는 항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겁니다.
주기적인 삶이란 뭐냐? 여자는 초경을 겪게 된 뒤부터(사실은 그전부터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과정이겠지만) 한 달이란 단위로 난자를 생산하는 작업을 합니다. 성행위야 남녀가 같이 한다지만, 아기가 생겨나는 순간인, 수정이 이뤄지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여성에게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즉 여성의 난자가 공급되느냐 마느냐인데, 이같은 난자의 공급은 매우 주기적이지요. 따라서 여성은 한 달을 주기로 거의 정확하게 가임기간이 주어지지요. 여성의 삶은 이에 맞춰 리듬을 타며 살고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남자는 언제든지 성적인 결합을 할 수 있는 무장을 하고 있다고 볼수 있지요. 물론 개인사정에 따라 다른 점이야 없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성기능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전천후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이건 왜냐하면, 여성이 수정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그게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랍니다. 이만큼 번식(?)을 위한 생물의 유전적 계획은 치밀한 거지요.
그런데 묘한 것이, 애기는 여자가 낳는 점입니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배부른 여인의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애처가 남편의 갸륵한 정성으로도, 애기를 대신 낳아주는, 산고를 대행할 수는 없게 돼있지요. 하지만 이를 악물고 애기를 낳을 때, 아내들은, 이런 고통의 상황을 안겨준 남편들에 대해 무자비한 욕을 내뱉는다고 하더군요. 복도를 왔다갔다 초조하게 담배를 물고 서성거리는 남편들은, 자기의 2세에 대한 야릇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있겠지요.
그런데 여성이 오래 사는 비결은 이같은 섹스 혹은 임신과 매우 관련이 깊다는 것이 이 분의 주장입니다. 여성이 생식을 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생명의 시계를 10년 동안 멈추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난소를 제거한 여성은, 이같은 보상의 10년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건 분명 인간의 의지는 아니지요.
이 은총의 10년. 여성의 30세부터 39세 사이. 이 의학자는 이것을 "안정화"단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인슐린이나 당의 혈중농도 증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거지요. 말하자면 노화가 멈춘 상태입니다. 하지만,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남편들은 이 기간에도 신나게(?) 늙어가지요. 이같은 안정화단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21세부터 49세사이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식후 인슐린 농도증가를 조사해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3배나 높다는 거지요. 즉 남자가 사망의 묘석쪽으로 걸음을 열심히 옮기고 있는 순간에, 여자는 같이 보조를 맞추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하느님 빽(?)으로, 은근슬쩍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슐린은 동맥경화발달에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입니다. 인슐린은 바로 동맥경화의 주범이지요. 동맥경화는 우리가 노화라고 부르는, 가장 무섭고 피하기 어려운, 질병의, 연대장쯤 되지요. 성급한 사내들은 뛰어가서 연대장님과 악수를 하는 거구요.
난소제거 수술을 받는 여성들은 안정화단계를 겪지 않습니다. 남성보다 10년을 더 살 수 있는 면허증을 반납한 거지요. 물론 이분의 설명에,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수수께끼의 해답을 모두 맡길 수는 없을 겁니다. 거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어떤 섭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생물체의 생존사멸 질서를 관장하는 어떤 힘의 총체적인 프로그램의 섬세한 일부일 수도 있을 것이며, 단지 생체학적, 생리학적인 분석의 작은 그물에 불과할수도 있으며, 그보다 더 다층적이고 사회적이며 우주환경적인 원인과 뜻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려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생각들에서, 우리가 우리의 신체일부, 우리가 숨쉬는 삶의 한순간조차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맹목의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세상의 수많은 신비와 지혜들에 대해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카드뉴스, 이미지 자료 = 이윤기 감독의 영화 '남과 여'(2016), 창작뮤지컬 '사춘기'(2009). 이중섭 화백의 작품 '나뭇잎을 따주는 남자', 러시아 영화 '운명의 아이러니'에서 발췌.)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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