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스토리 - 조선 양성애자 사방지 사건의 전말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5월17일은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and Transphobia, IDAHO)이다. 성소수자는 일반적인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를 뜻한다. 프랑스의 루이 조르쥬탱 교수가 제안해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 브라질은 2010년부터 IDAHO를 국경일로 지정한 바 있다. 이날을 맞아, 550여년 전 조선 땅에 있었던 '양성애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보면 어떨까 싶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1월, 국제적인 수준(?)을 의식해 야한 영화에 대한 심의가 다소 느슨해져 있던 틈을 타고 인상적인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하나가 개봉됐다. 송경식 감독의 '사방지(舍方知)'다. 사방지 역은 이혜영이 맡았고, 동성애 애인인 이소사 역은 방희가 맡았다.
대강의 이야기를 간추려 보면 이렇다. 양성(兩性)을 타고난 사방지는 어린 시절 버려졌으나 스님의 구원으로 절에서 자란다. 그 혹은 그녀가 성에 눈뜨는 시기가 되었을 무렵, 남편을 잃은 여인 하나가 절에 제사를 지내러 온다. 그녀가 이소사이다. 소사는 사방지와 사랑에 빠졌지만 세상의 눈초리를 두려워하여 곧 배신을 한다. 이후 사방지의 복수극이 시작된다. 이런 줄거리다. 이 영화는 사극의 옷을 입고 동성애를 슬그머니 꺼낸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름도 묘한 '사방지'는 실제 인물일까. 사방지가 기록에 남은 시기는 조선시대 세조 28년(1482년)이다. 영화에 등장한 이소사는 '과부 이씨'로 나온다. 이 여인은 권력 집안의 규수였다. 세종 대의 천문학자 재상 이순지의 딸이며 김귀석(金龜石)의 아내였다. 남편 김귀석에 대한 정보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결혼 직후에 사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 이씨는 청상과부로 살고 있었는데, 이웃에 살던 여승과 친했다. 어느 날 여승은 이씨에게, 한 사람을 소개시켜준다. 그가 사방지다. 사방지는 이씨의 친척집에 있던 여종이었다.
이씨는 사방지를 만나자 마자 눈과 가슴과 허리께에 지르르 전기가 오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이씨의 집에서 10년간 열애를 나눈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매한가지니, 이런 소문이 안 날 리 없다. 과부와 여장한 남자가 놀아난다는 풍문은 당시 사헌부에까지 알려져, 조사가 시작된다. 사헌부에서 이씨에 대해 알아보니, 재상의 딸이었기에 얼른 수사를 접고 그녀를 석방하려 한다.
이때 권람(1416-1465)이 나선다. 권람은 조선의 기틀을 세운 양촌 권근의 손자이다. 그런데 아버지 권제는 본처인 어머니(이씨)를 버리고 첩에 빠졌다. 아들이 그러지 말라고 호소했으나 오히려 아버지는 아들을 폭력으로 대했다. 이런 기억을 가진 권람이었으니, '가정을 해치는 비정상적인 행위'에 대해 견해가 사나울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여하튼 권람은 "사방지는 요물이니 쳐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강경한 분위기를 당시 제왕이었던 세조가 말리고 나선다. "선왕이 사랑했던 이순지의 딸이 연루되어 있으니, 관대하게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권람을 설득한다. 하지만 여론은 좋지 않았다. "이순지는 사방지를 사위로 삼았느냐"고 조롱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왕명이 있고난 뒤이니 사방지 석방 결정을 바꿀 수 없었다. 이순지가 죽고난 뒤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이씨가 다시 사방지를 안방으로 끌어들여 놀아난다는 소문이 조정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사헌부는 다시 사방지를 체포해왔다.
"네 이년, 옷을 벗어보아라. 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야겠다."
그의 벗은 모습을 바라본 조선의 '검찰'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생식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남자도 아니었지만, 여자라고도 할 수 없었다. 남자이기도 했고, 여자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세조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고민에 빠졌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몸을 지니고 났는데, 그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만약 내가 이런 몸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그렇지만 세간의 불평과 지적들을 왕이라고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당시 뛰어난 천재이자 충복인 서거정을 불렀다.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음과 양은 하늘의 도리요, 여자와 남자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이 자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니, 그 도리를 따질 것이 없습니다. 어려서 '강호기문'이란 책을 읽었사온대, 거기에 한 비구니승이 음양의 생식기가 모두 없었던 사건이 나왔습니다. 이 비구니승이 한 여인과 어울려 놀았다 하여 지방관에게 붙잡혀 왔지요. 지방관은 생식기가 없으니, 성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그를 풀어주려 하였습니다. 그때 한 과부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지요. '소금물을 거시기의 뿌리에다 적시고 개로 하여금 이곳을 핥게 하면 그 속에서 거시기가 튀어나올 것입니다.' 지방관이 말 그대로 해보니 실제로 그러하였습니다. 지방관은 '이 자는 인간 도리를 어지럽히는 자이다'라면서 죽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통쾌히 여겼다 하옵니다. 대개 천하의 사리가 이러합니다."
"그러면, 그런 실험을 해서 그가 실제로 행위가 가능한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말이냐?"
"전례가 이미 있으니..."
"경은, 허투로 아는 척 하지 말라. 그도 사람이 아닌가. 태어난 것이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떻게 처벌한단 말인가. 그저 격리만 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겠는가. 정치는 사람의 '악행'을 말릴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선 안되지 않겠는가."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지탄을 받는 세조의 '뜻밖의 면모'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실천한 군주이기도 했다. 오늘같은 날에 한번 새겨봄직한 이야기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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