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찾은 카지노에서 200만원 횡재
-'초심자의 행운'에 속아 매일 출근도장
-3개월새 1억6000만원 잃고 중독자 신세
-스키타러 왔다가 등록금 날린 대학생도
[아시아경제 문제원 수습기자] "도박이 문제인 걸 알지만 그 놈의 본전 생각에 어쩔 수가 없어요. 중독돼 버린거죠."
지난달 28일 오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사우나 근처 야외 흡연실. 줄담배를 피우던 정모(53)씨는 긴 한숨과 함께 이렇게 푸념했다. 그는 이날도 오전 10시 카지노가 문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흘 전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근처에서 먹고 자며 매일 카지노를 찾는다고 했다. 이날도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 사북읍에 있는 여관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다시 이곳에 나타났다.
그는 10년 전 경기도 의정부에 살 때 약사였던 같은 아파트 이웃이 '좋은 데 가자'고 하는 말에 혹해 처음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첫날 운좋게 200만원을 손에 거머쥐었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오히려 독이 됐다.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카지노를 드나들었고 3개월 만에 1억6000만원을 잃었다. 의정부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고 현재 부산으로 내려가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정씨는 "한 달에 몇 번씩 갑갑할 때는 나도 모르게 이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는 "부산에서 택시 회사를 운영하면서 땅 1000평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도 이곳에 잘못 발붙여 알거지가 됐다"며 "지금 카지노에 있는 사람 태반이 중독자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날에도 슬롯머신으로 50만원을 따고 500만원을 잃었다. 이날은 미리 준비한 600만원을 다 잃을 때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종에서 온 40대 남성 김모씨도 6년 전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가 첫날 70만원을 딴 게 시작이라고 했다. 한 달에 6~7번 정도 와 2~3일씩 머무르며 하루 평균 수백만원을 쓴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끼리 '강원랜드 기둥 하나는 내가 세웠다'고 말한다"며 "나도 아파트 한 채 값을 날렸지만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 아파트 1~2채는 잃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생들이 겨울에 스키 타러 왔다가 재미삼아 시작해 등록금 날리는 경우도 많이 봤다"며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사북읍 여관을 전전하며 도박하는 장기체류자들은 현금 서비스를 받다 안 되면 타고 온 차나 귀금속을 전당포에 맡겼다가 더러 돈을 따서 찾아 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못 찾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당포를 찾는 사람은 갈 때까지 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11시께 카지노가 개장한 후에도 야외 흡연실에는 통화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김씨는 "이 시간에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대부분 집에 송금해달라고 전화하러 나온 사람"이라며 "요즘 보이스피싱 때문에 송금 제한시간이 있어 이렇게 시간을 때우다 돈을 찾아서 또 게임을 한다"고 했다.
강원랜드가 문을 연 지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박중독자 양성소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강원랜드에 따르면 지난해 100일 이상 카지노를 출입한 사람을 일컫는 이른바 '강박적' 고객은 총 2106명이었다. 2007년 3110명에 비하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도박중독자가 이곳을 찾고 있다. 매년 50~99일 출입하는 '문제성' 고객은 9555명으로 2007년 7087명에 비해 되레 34% 정도 늘었다.
강원랜드는 도박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원랜드중독관리센터(KLACC)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2012년에는 카지노 출입일수를 월 15일로 제한했고 2개월 연속 15일 입장을 하면 의무예방상담 후 입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센터에서는 고객들의 입장 패턴을 분석해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고객에 대해 자제를 권고할 수는 있어도 추가 출입제한을 강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북읍에서 10년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는 "강원랜드가 규제정책을 내놓아도 도박할 사람들은 다 한다"며 "15일 출입제한에 조급해진 사람들의 베팅 액수만 높아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다보니 카지노가 운영하는 KLACC이 오히려 도박중독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영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치유재활부장은 "센터가 의미는 있지만 고객들이 도박을 하는 과정 중 하나로 상담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한 게 현실"이라며 "도박중독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병원이나 센터로 연결시켜 주는 2차 예방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을 통해 병원에 입원할 정도라고 판단되는 고객은 강원랜드가 직접 병원을 연계해주고 최대 2130만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모두 책임지지만 이마저도 자발적으로 원하는 고객에 한해서만 이뤄진다. 지난해 KLACC에서 상담 및 교육을 받은 4000여명의 고객 중 치료 지원을 받은 고객은 고작 27명(0.68%)에 불과했다. 2008년 78명, 2012년 45명, 2014년 19명 등 치료 지원을 받는 고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처럼 강원랜드에 도박중독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국인 입장이 가능한 카지노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현재 국내에 총 17개의 카지노가 있지만 강원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16개는 외국인만 출입이 가능하다. 때문에 국내 상당수 도박중독자들이 몰리고 그럴수록 일반 관광객은 발길을 끊어 초창기 설립 취지인 관광 활성화 기능이 퇴색하고 있다. 실제 평상시 이곳을 찾는 고객 중 가족과 커플 등 일반 관광객 고객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년째 매주 2~3일을 이곳에서 보낸다는 한 남성은 "평일에 오면 매번 보는 사람만 본다"며 "주말이나 여름ㆍ겨울 휴가철쯤 돼야 외부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펀드매니저를 하다 은퇴한 후 올해부터 강원랜드를 종종 찾는다는 50대 남성은 "미국 지역에 있는 카지노를 가면 은퇴한 노인들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통에 5센트, 10센트 동전을 꽉 채워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하루 종일 즐기듯이 게임을 한다"며 "카지노의 첫째 목적이 관광객과 지역 노인들의 여가 시간 보내기인 미국 카지노에 비하면 여긴 카지노가 아니다"고 했다.
김창완 KLACC 실장은 "무조건 출입일수가 많은 고객보다는 갑자기 도박에 빠지는 '문제성' 고객을 위주로 상담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직원들이 상담을 권유하지만 거부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도박은 본인 문제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개선 의식이 없으면 치료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문제원 수습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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