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낱말의 습격' - 메신저 '자음 웃음'의 심리학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오래전 左絲右絲中言下心(좌사우사중언하심)이란 고백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좌익들도 인터넷에 줄대고 우파들도 인터넷에 엮여 있으니 말을 똑바로 하고 마음을 낮추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사모할 연(戀)을 파자한 것인데, "그립습니다"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일종의 사랑고백이다.
메신저 문화의 일상화로 의성어를 자음으로만 표현하는 표기법이 유행을 탄다. 처음엔 외계어처럼 보이던 ㅎㅎ와 ㅋㅋ가 이젠 진짜 입으로 내는 소리처럼 자판으로 '발성'되는 형편이다. 모음이 생략되고 자음이 반복되면서 타이핑이 간편한데다 미처 성음이 되지 않은 채 바람소리처럼 새나오는 웃음의 느낌이 제법 음산하기까지 하다.
이제 우리의 많은 웃음은 소리로 내는 것도 아니고, 안면이 펴지면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말들 속에서 자음이 거듭해서 튀어나가는 '시늉 표현'이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웃음이 자아내던 감정의 소모는 최소화하면서 호감이나 기분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게된 셈이다. 어찌 보면 얼굴은 사뭇 사막처럼 건조한 표정이면서 타이프만 열나게 ㅋㅋ ㅎㅎ를 하고 있는 상황은 엽기적인 느낌도 든다.
한 친구가 내게, 예전엔 ㅎㅎ를 많이 해서 그런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데, 요즘은 왜 ㅋㅋ를 많이 하느냐고 물어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런가? 나도 의식하지 못한 일이다. ㅎㅎ는 그만큼 오래된 웃음이고 ㅋㅋ는 그 뒤에 나온 웃음이라, '아재'스러움을 면하려 ㅋㅋ로 갈아탄 게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 두 웃음이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는 걸 발견한 건 그 지적 이후이다.
ㅎㅎ는 흐흐에서 나온 말이다. 하하나 호호, 허허나 후후도 있겠으나, 즉흥적인 느낌으로 보면 흐흐가 가장 쉽게 연상되는 웃음이다. 흐흐는 정상적인 웃음이 아니라 살짝 음흉한 웃음이며 생기있는 웃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내뱉는 듯한 음산한 웃음이다. 흐흐는 표현된 것과 마음 속의 꿍꿍이가 다른 자가 내는 웃음이기도 하고, 쓸쓸하게 내뱉는 허무주의의 웃음이기도 하다. 전시대의 시니컬한 지적 면모를 담은 것이 이 웃음인지도 모르겠다.
ㅋㅋ는 크크나 큭큭이 가장 가깝다. 킥킥도 쿡쿡 따위도 이 계열에 들 것이다. 이 웃음은 활짝 열고 내뱉는 웃음이 아니라 입술을 통제한 가운데 목젖에서 공회전하는 듯한 웃음이다. 참는 웃음이며 참아서 조금 터진 웃음이다. 이 웃음은 절제나 내숭이 힘겨운 어린 아이의 웃음이며 그래서 천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ㅎㅎ처럼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소리가 아니라 자음만 있긴 해도 턱턱 어딘가에 걸려서 긴장이 생겨나는 웃음이다.
그러나 크크에 있는 조롱의 맛은 여전히 있다. 크~의 핀잔과 '불완전 화해'의 냉소 또한 어른거린다.
ㅋㅋ가 ㅎㅎ보다 더 모던한 느낌이 드는 건, 그것의 탄생 연대에도 있지만, 장난끼와 수다스러움, 자조적인 냄새가 더 심화된 '반어적 웃음'의 낌새가 '호모 메신저' 인류에게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ㅋㅋ로 진화한 까닭도, ㅎㅎ의 젊은 시니시즘(cynicism)을 벗고, 만민평등의 디지털 문명 속에서 동심처럼 킥킥거리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문득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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