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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에 나온 '당 좀 줄입시다'… 여당 아니면 야당?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17초

빈섬 '낱말의 습격'-달콤씁쓸 설탕 이야기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정부가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당류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다. 이 뉴스를 보도한 신문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헤드라인은 k신문의 '달면 뱉으세요'였던 것 같다. d일보는 '당 좀 줄입시다'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그 곁에 있는 총선기사와 겹쳐 읽으면 '새누리당 좀 줄입시다'로 읽혀 살짝 우스꽝스럽다. 정부의 발표는 국민건강을 챙기려는 선의로 읽는 게 맞겠지만, 담배의 경우와 비슷하게 여론을 조성해 '설탕세'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눈총도 섞여 나온다. 이 비슷한 뉴스가 최근 외국에서 나왔던 게 기억난다.


선거철에 나온 '당 좀 줄입시다'… 여당 아니면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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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雪糖)의 뒷글자는 원래 당(糖)으로 읽히지만, 설탕과 사탕의 용례에서만은 '탕'으로 읽힌다. 설탕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눈처럼 하얀 알갱이의 엿'이다. '엿'이라고 표현한 것은 설탕이 중국 문화권으로 들어오면서 그간에 익숙한 것을 비유로 삼아 설명해야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엿은 곡물을 원료로 해서 만든 단맛 나는 물질로,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나온 설탕과는 조금 다르다.


설탕은 원래 사탕(砂糖)이란 이름으로 먼저 불렸던 것 같다. 사탕은 '모래알처럼 생긴 엿'이란 의미다. 설탕의 원료가 되는 식물이 설탕수수와 설탕무가 아닌 것을 보면 '사탕'이란 이름이 먼저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탕이나 설탕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면서, 당(糖)이란 말은 의미의 변화를 겪는다. '엿'이라는 원래 의미 대신에 설탕의 질료나 성분을 뜻하게 된다. 단 것 전체를 '당'이라고도 하고, 당분과 당류라는 말이 자주 쓰이게 되었다. 피 속에 과다하게 들어간 '당'이 치명적인 성인병의 한 장르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저토록 팔을 걷고 나선 것도, '당'의 과용이 국민건강을 해칠 정도가 되었다는 판단일 것이다.


설탕은 2400년전부터 인류가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와 그리스에서는 인도에서 약재 설탕을 구입한 기록이 있다. 북아프리카 아랍인인 무어인들은 스페인에 설탕을 전했는데, 이후로 유럽의 설탕무역은 스페인이 좌지우지했고, 이후 이탈리아로 넘어간다. 우리는 삼국시대에 이미 설탕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있으나,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고려 때 송나라로부터 설탕이 처음 들어온 기록이 있다. 설탕회사가 만들어진 것은 1906년 이후였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란 말은 항상심이 없고 이익만을 따지는 비정한 세태를 꼬집는 표현이다. 설탕은 인류가 그토록 기꺼이 삼켰던 것이고, 쓴 약 따위는 필요는 하지만 당장 입이 괴로우니 자주 뱉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본성이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그 본성 또한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것을, 나라가 설탕과 전쟁을 벌이게까지 만든 현실이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세상의 '단 것'만 밝히다가 제 몸을 해친 것이 어찌 설탕의 경우 뿐이겠는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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