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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은 왜 새빨간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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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 '낱말의 습격'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무심코 쓰는 말 중에 '새빨간 거짓말'이란 표현이 있다. 문득 왜 하필 새빨간 색일까 궁금해졌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유럽에는 거짓말에 하얀 것이 있고 까만 것이 있다는 건 들은 적이 있다. 악의가 없고 무해한 거짓말은 하얀 색이고, 시커먼 속을 숨기고 있는 것은 까만 색이라는 얘기였는데, 듣자 마자 공감이 갔다.

그런데 새빨간 거짓말은? 이것은 거짓말의 취지를 말하는 말이 아니다. 거짓말의 싱크로율이 100%라는 뜻이다. 거짓말 중에도 인간이 모질거나 지독하지 못하여 슬금슬금 진실이 끼어들어 순도가 묽어지곤 하는데, 그게 완벽하게 유지되는 상태여야 새빨간 거짓말이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새빨간 색인가. 그냥 빨간 색도 아니고 빨강의 순도를 강조한 '새'까지 갖다붙인 새빨간 거짓말인가.


사전을 찾아봐도 용례만 있을 뿐, 속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곳이 없다. 새파랗거나 샛노란 거짓말은 없는데 왜 새빨간 거짓말만 있을까. 이 말은 일본말에서 왔다는 의견이 있다. 마츠가나 소오(眞赤なそう(まっかなそう))를 번역했다는 것이다. 또 일본어로 새빨갛다(赤)는 명백하다, 분명하다, 명확하다의 의미로 진(眞)과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 거짓말'이란 뜻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새빨간 거짓말은 왜 새빨간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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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것을 아이의 상태와 같은 순수로 읽어낸 것은 중국인도 마찬가지였다. 노자는 아이의 마음을 적자지심(赤子之心)이라 했고 순자는 숨김없는 그대로의 마음을 적심(赤心)이라 표현했다. 불모지는 적지(赤地)라고 하니, 순수와 무(無)를 의미하는 것이 빨강이다. 적나라하다 할 때의 적(赤)도 마찬가지 용례다.


1958년에 나온 경향신문 '여적'칼럼을 보면, 새빨간 거짓말의 의미를 가리고 숨길수없는 환하게들여다보이는 거짓말로 풀고 있다. 한자말의 적(赤)으로 풀이한 것일 터이다. 한편 충청도의 한 민담에는 '새빨간 거짓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이렇게 가르쳐준다. ㅋ


"지붕 없는 집에 눈 없는 영감이 대통 없는 담뱃대로 담배를 태워 물고, 문살 없는 문을 열고 앞산을 바라보니 나무 없는 앞산에서 다리 없는 멧돼지가 떼를 지어 뛰어가길래 구멍 없는 총으로 한 방 쏘아 잡아서 썩은 새끼줄로 꽁꽁 묶어 지게뿔 없는 지게에 지고 사람 없는 장터에 나가 한 푼 안 받고 팔아서 집으로 오는데 물 없는 강물에 배를 타고 건너가는데 빈 가마니가 둥둥 떠내려 오기에 그것을 건져내어 이리저리 들쳐보니 새빨간 거짓말이 잔뜩 쏟아져 나오더라."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어린 시절 나도 듣고 자랐던 기억이 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답게 '새빨간 거짓말'의 유래를 삼삼한 구라로 푼다. 고대 일본 나라(奈良)시대의 형법에 악질적인 거짓말을 하면 '새빨간 떡을 한꺼번에 열두 개를 먹어야 하는 형벌'이 있었는데, 그 발갛게 달궈진 떡이 목구멍에 달라붙어 질식사를 하게 되는 끔찍한 벌이라는 것이다. 떡은 어디 가고 '새빨간'만 남았는지 설명하는 서비스가 없는 이 스토리는, 정말 누군가가 재미로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하루키 주장의 효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 벌려진 입 속으로 들여다보이는 목젖을 연상하게 된다. 놀리는 혀와 꿀떡거리는 목젖의 형상이 '새빨간 거짓말'의 내막처럼 리얼하게 재현되는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이 어디서 온 것이든 간에, 그것에는 부정적인 어감이 깊이 들어있다. '새'와 '빨간' 사이에 입술을 살짝 다무는 그 속에서 일어나는 압박과 긴장이 이 말이 함의하는 적개심을 폭발시킨다. "속았다"는 울분과 '더 이상 날 속이지 말라"는 경고가 그 말에 어른거린다.


태어난 아이의 빛깔을 사용한 그 거짓말은, 어쩌면 우리 삶 전체의 가식적 양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삶 전체가 눈부시고 허무한 한 줄기 거짓말은 아닐까. 그러니 그 거짓말의 생을 살면서, 자각증상처럼 진실해지려고 노력을 해보라는 조물주의 충고같은 것은 아닐까. 새빨간 거짓말만 하다가 가면 평생 어린아이의 핏덩이를 못 면한 것이라는 핀잔은 아닐까.혹은 인생이 새빨간 거짓말이니 너무 엄숙과 근엄과 신중과 사려로 품만 잡지 말고,김구라처럼 스스로 구라쟁이임을 천명하게 사는 것이 훨씬 정직하다는 역설적 팁은 아닐까.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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