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람 - 43년전 오늘 세상을 떠난 거장의 작품과 숨은 사연
현대 미술에 대해 잘 몰라도 파블로 피카소라는 이름은 누구나 안다. 마드리드에 가면 '게르니카'를, 뉴욕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는 것이 필수 관광 코스로 인식될 정도다. 피카소의 작품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에 거래되지만 그는 평생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다작의 화가였다. 약 1만3500점의 그림, 10만점의 판화, 3만4000점의 삽화, 300점의 조각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카소의 작품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태반이라는 얘기다.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 피카소의 작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것도 그의 작품이 원체 많기 때문이다. 작품이 많은 만큼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8일은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지 43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까지 피카소의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지난해 경매에 나온 '알제의 여인들'이다. 1억7940만 달러였는데 지금 환율로 보면 2085억원에 달한다. 경매회사에 내는 수수료 12%를 포함한 가격이다. 이는 피카소 작품뿐만 아니라 회화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이었다. '알제의 여인들'이 경매에 나오기 전 피카소의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꿈'이었다. 1억5500만 달러였는데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1800억원이 넘는다.
나란히 피카소 작품 중 최고가 1, 2위를 기록했지만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동명 작품을 재해석한 '알제의 여인들'과 달리 '꿈'은 실제 모델이 있었고 피카소의 인생과 얽힌 사연도 있다. '꿈'은 1932년 피카소가 그의 연인 마리 테레즈 발터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피카소는 오후 한나절에 이 그림을 후딱 그렸다고 한다. 당시 발터의 나이는 22살. 피카소의 마음이 오죽 급했을까.
피카소가 발터를 처음 만난 것은 1927년으로 그의 나이 45세, 발터는 고작 17세였다. 게다가 피카소는 이미 러시아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한 유부남이었다. 부부관계는 소원했지만 코클로바가 이혼을 해주지 않는 바람에 피카소와 발터는 10년 동안 '불륜관계'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성 편력이 화려했던 50대의 피카소가 20대 초반의 발터를 바라보는 시선에 성적 욕망이 가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꿈'에 그려진 발터의 왼쪽 뺨에서 남성의 성기를 찾아내는 이들도 있다.
피카소가 어린 연인을 그렸던 이 작품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카지노 재벌 스티브 윈은 199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 그림을 샀다. 그런데 실수로 이 그림에 '구멍'을 내면서 더 유명해졌다. '미술경매 이야기'라는 책은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윈은 이 작품을 1997년에 4800만 달러에 샀는데, 2006년에 이 작품을 팔겠다고 공개하면서 기자들에게 보여주다가 그만 자기 팔꿈치로 그림을 건드려 망가뜨린 것으로 유명하다. 즉각 보도가 되면서 이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림을 복원하는 데 든 비용이 9만 달러였다고 한다."
하지만 윈이 망가뜨린 '꿈'은 2013년 오히려 더 비싸게 팔렸다. 산 사람은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티브 코언이었다. 코언은 2006년 이 그림을 1억3900만 달러에 사기로 했다가 윈의 '팔꿈치 사건' 이후 매매를 취소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뒤 손상된 그림을 더 비싼 값에 산 것은 코언의 관심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복구도 감쪽같았다고 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