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인식과 '10년후 세계사'… "더러운 역사라도 역사다'
[아시아경제 권성회 기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7일 위안부 할머니 29명과 그 유족 등 41명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민변은 ‘한일 합의’가 피해자들의 존엄과 가치를 포기했다는 점, 할머니들이 합의에서 배제됐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28일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10억엔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아시아경제 3월28일 ‘위안부 할머니들, ‘한일 합의는 위헌’ 헌법소원’ 기사 요약>
다시 ‘강제 아니다'라는 일본
일본은 지난 2월16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의 군과 관헌이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과의 합의가 있은 지 1달 반만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뒤집은 것이다. 일본은 합의문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1400년대에 살던 사람들이 100년 후를 예상하는 것보다,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10년 후를 예측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인다’는 시대에 10년 후 미래를 내다보는 책이 있다. ‘10년 후 세계사(구정은·김유진 지음, 김태권 그림, 추수밭, 2015)’가 그렇다. 이 책은 ‘미래 역사를 결정할 19가지 어젠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 중 15번째 어젠다는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역사다-세계 과거사의 그늘과 극복’이다.
이 장의 시작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는 국가폭력의 시대였다. 강대국의 제국주의는 약소국을 식민지로 짓밟았고, 광기에 사로잡힌 독재정권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일삼았다.」(213p) 첫 구절에서 보다시피 제국주의 국가의 폭력과 그로부터 핍박받았던 약소국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하지만 세기가 바뀐 현재의 모습은 국가별, 지역별로 다르다.
프랑스의 ‘너무 늦은’ 사과
먼저 프랑스와 아이티의 이야기다. 프랑스 식민지배하에 있던 아이티는 ‘아이티 혁명’을 일으켜 1804년 세계 최초 흑인 공화국을 건설한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은 잠시였다. 「프랑스가 ‘식민지 졸업 대가’를 요구하며 함대를 동원해 무역거래를 봉쇄하자 아이티는 결국 ‘독립 부채’ 9000만프랑(오늘날 약 1조 5000억원)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농장주들이 포기한 땅과 노예들에 대한 보상 명분이었다. 이 부채로 아이티는 완전히 피폐해졌다. 1947년까지도 프랑스와 미국 은행들에 진 빚은 다 같지 못할 정도였다.」(215p)
프랑스 대통령이 아이티에 최초로 공식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났을 때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해 5월12일 아이티 방문 연설에서 「“우리가 과거 아이티에 한 행동에 대해 ‘도덕적 부채’를 느낀다”」(215p)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아이티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항의시위에 참여한 아이티의 대학생 짐 루시엥은 “노예 착취와 독립 부채에 대한 배상금을 돌려주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프랑스를 환영할 수 없다.”」(215p) 책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가해자인 프랑스는 쉽게 미래를 얘기하지만 피해자인 아이티는 과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고통과 묶여 있기 때문이다.」(215p)
젊은 세대가 바꾼 독일
프랑스에 반대되는 사례는 독일이다. 「자국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속죄하고 보상해온」(219p) 독일이지만 이들도 처음부터 과거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책에 따르면 「독일은 1949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사면법을 통과시키고, 이들이 공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서방 연합군은 냉전이라는 국제정세 때문에 이를 눈감았다」(219p)고 할 정도로 당시엔 나치 과거사 규명보다 소련 위협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변화를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젊은 세대였다. 「잊혀 가던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낸 것은 전후 민주주의 교육과 인권의식의 세례를 받고 사회에 진입한 젊은 세대였다. (중략) ‘68세대’는 “나치즘이 이념은 좋았지만 방법이 잘못됐을 뿐”이라던 윗세대의 자기합리화를 단호히 거부했다.」(219p)
물론 이런 관념이 단기간에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학살 추모비에 헌화한 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당시 슈피겔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 가운데 48%는 이것이 ‘지나치다’고 했고, 41%만이 ‘적당하다’고 답했다. 이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과 사죄 역시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며 내부로부터의 저항을 딛고 격렬한 토론과 공론화를 해온 끝에 공감대를 이뤄낸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220p)
처벌보다 중요한 건 진실
책은 「과거사 규명은 가해자에 대해 응징할 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실의 토대’ 위에 진정한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222~223p)라며 이 장을 마무리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용된 스페인 역사가 훌리오 발데온의 말이 흥미롭다. 그는 「“성공의 역사든 실패의 역사든, 공정한 것이든 부정한 것이든 과거를 아는 것은 콤플렉스나 양식의 가책 없이 현재를 대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223p)이라 말했다. 잘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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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어떤가. 지난해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총리로서는 최초로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섰다. 그의 연설은 이 자리에서 일본이 ‘보통 국가’임을 승인받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를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다. 16세에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던 이용수 할머니였다. 그는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서라면 200살까지도 버틸 것”」(216p)이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베 총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연설에서 2차 세계 대전에서 숨진 미국인들에 대해 애도했지만 위안부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그 대신 앞으로 잘 하겠다는 점만 강조」(216p)했다고 한다.
권성회 수습기자 stre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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