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더이상 특별한 소재 아니지만 거부감 최소화해야 흥행
여전히 편견의 시선 강한 현실...대학조차 용인하기 어려운 소재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동성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한다. 주제가 아닌 하나의 상황일 뿐이다."
1998년 8월, 영화 '해피투게더'의 개봉에 맞춰 내한한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말이다. 전년도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이 작품은 1년여 동안 국내에서 수입 불가 판정을 받았다. 동성애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동성애 표현이 덜 노골적인 아시아버전으로 다시 편집되면서 겨우 상영의 길이 열렸다.
동성애는 스크린 속에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멜로 장르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영화는 1970년대부터 동성애를 꾸준히 다뤄왔다. 이를 주도한 감독은 데릭 저먼, 루치노 비스콘티,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거스 반 산트 등 주로 동성애자였다. 특히 저먼은 데뷔작 '세바스찬(1976년)'에서 동성애 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야기를 아름답거나 동정 어린 시선으로 포장하지 않고, 주인공을 외로운 고립자로 그렸다. '카라바조(1986년)'에서는 예술가, 동성애, 질병, 반항의식 등으로 대변되는 자신을 주인공 카라바조의 삶에 투사했다.
유럽의 유수 영화제들은 잇달아 나오는 독창적인 영화에 열광했다. 보수적인 미국 아카데미시상식도 외면만 할 수는 없었다. 1994년 '필라델피아'의 톰 행크스(60)에게 남우주연상, 2006년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 감독(62)에게 감독상을 수여했다. 2014년에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47)와 자레드 레토(45)에게 각각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안겼다. 반면 강렬하면서 부드러운 호흡으로 올해 평단의 극찬을 받은 '캐롤'은 무관이었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적 요인은 토드 헤인즈 감독(55)이 영화의 배경인 1950년대 뉴욕을 런던처럼 그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동안 아카데미시상식은 미국 자본으로 찍은 영국 느낌의 영화들에 경계심을 보였다. 반대로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타이완 국적의 감독이라도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잘 나타난 작품에는 높은 점수를 줬다.
사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스크린 밖이 더 강하다. 여전히 성적 소수자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 '자유로운 담론장'이라는 대학조차 용인하기 어려운 소재다. 지난해 11월 숭실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교내 인권영화제는 학교 측의 반대로 장소를 옮겼다. 국내 동성커플로는 처음으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51)-김승환(32) 부부의 사랑을 그린 영화 '마이 페어 웨딩'이 대학의 설립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2013년에는 동성애자 주교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이 비슷한 이유로 고려대, 서울여대, 감리교 신학대학교 등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은 극장가에서 흥행한다. 이준익 감독(57)의 '왕의 남자(2005년)'는 1230만2831명을 동원했고, 유하 감독(53)의 '쌍화점(2008년)'은 377만9553명을 모았다. 지난달 4일 개봉한 '캐롤'은 지난 1일 3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영화들은 공통점이 있다. 동성애자를 특별한 소수로 조명하지 않는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할), 캐롤의 테레즈(루니 마라), 왕의 남자의 공길(이준기) 같이 잘 생기고 예쁜 캐릭터를 배치해 동성애의 감성을 촘촘하게 축조한다. 이야기도 판타지처럼 그려 대중이 느낄 수 있는 거부감을 최소화한다. 반대로 마이 페어 웨딩처럼 동성애를 현실적으로 조명한 작품은 대부분 외면을 당한다. 동성애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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