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에 집중하기보단 보도 과정 차분하게 보여줘
문제 해결 극적장면은 부족, 언론포장도 다소 과해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기자를 등장시켜 실제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많다. 대부분 근원을 밝히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고발한다. 24일 개봉한 '스포트라이트'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영화는 2002년 가톨릭 사제 약 일흔 명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보도한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을 조명한다. 토마스 맥카시 감독(50)은 여전히 반복되는 성추행 문제를 꼬집는데 힘을 주지 않는다. 비밀 법정기록에 매달리는 마이크 레벤데즈(마크 러팔로),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각종 자료를 조사하는 매트 캐롤(브라이언 제임스), 이들을 아우르는 로비 로빈슨 팀장(마이클 키튼)의 취재 과정을 전하는데 몰두한다.
이들은 철저한 확인 규명과 확실한 증거를 앞세워 성직자들의 범죄가 얼마나 심각하고 만연한지 세상에 알렸다. 가톨릭교회가 범죄를 저지른 사제들을 보호하고 법적 처벌을 받지 않도록 막았다는 사실은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2003년 퓰리처상 이사회는 "사제들의 성추행에 관해 비밀을 꿰뚫는 취재와 용기 있고 포괄적인 보도로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켰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변화를 가져왔다"며 그들을 수상자로 지목했다.
근래 심층 보도는 연예인 사생활 뉴스나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 기사가 난무하면서 뒷전으로 밀렸다. 맥카시 감독은 "양질의 고발성 기사가 적은 현실에서 스포트라이트는 모범이 될 수 있다. 충분한 자금과 노련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드는 저널리즘이 어떤 일을 해내고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각 인물들에 대한 특별한 설명 없이 취재 과정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카메라를 움직이지만 인물과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음악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 신파적 요소의 개입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그래서 주인공을 축으로 서술하는 일반 상업영화가 아닌 '보스턴 리걸'과 같은 미국 법정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런 영화는 인물의 입체감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기자들의 끈끈한 조직력으로 우려를 잠재운다. 가톨릭 사제들이나 취재를 방해하는 세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스포트라이트 팀의 동선에 집중해 순조로운 몰입을 유도한다. 새로운 정보를 수집한 기자들이 한데 모여 전열을 다듬는 신에서는 리듬감도 전해진다. 다만 취재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이 빈약해 극적인 장면을 기대하기 어렵다. 막막한 문제에 부딪히지만 쉽게 해결되는 흐름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된다. 보스턴 글로브 사장이 편집국장에게 취재 보고를 전달받고 보이는 자세가 대표적이다. "우리 독자의 53%가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 걸린다"고 걱정하지만 몇 마디 설명만 듣고 흔쾌히 기사 작성을 허락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언론을 할리우드식 영웅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지역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보스턴 토박이다. 그는 법정기록을 내밀며 기사를 내자고 재촉하는 레벤데즈에게 "개인의 일탈이 아닌 가톨릭의 실체와 체계에 다가가자"고 한다. 맥카시 감독은 이 대사를 언론계 선배라서 할 수 있는 말처럼 조명한다. 그러나 극 후반 로빈슨은 젊은 시절 같은 사건을 제보 받고도 편집국에 보고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 부정한 타협을 의심할 정황이 충분하지만 영화는 그 이유에 대해 파고들지 않는다. 오히려 로빈슨을 정의로운 언론인으로 매듭짓고 만다. 이 때문에 기사를 재촉하다가 화를 내는 레벤데즈의 모습은 개인의 일탈이나 철없는 행동으로 다가온다. 맥카시 감독은 "신문사와 기자들을 지지하는 영화다. 심층 취재하는 모두가 나에게는 영웅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 역시 자기반성이 동반돼야 하는 조직이다. 아무리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해도 기사와 작성자의 도덕성은 별개의 문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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