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통일이 돼야 결혼할 꺼란 말임다" 10년 전 초봄에 취재차 개성공단에 갔었다. 당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던 한 북측 여직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좀 편해졌다 싶은 마음에 "결혼은 언제?"라고 묻자 돌아온 말이다. 북한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공단 방문객들에게 브리핑을 해주는 직원이었다. "성격이 밝아 보인다"고 하면 "우울한 것보다 낫잖습니까"라며 웃었다.
제한되게나마 남측 사람들과의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는 직원이었으니 나름 대화의 매뉴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정해진 듯 보이는 형식 속에서도 진심을 담으려 했던 것 같은 기억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취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말을 붙였다가 "일이 많슴다. 선생님하고 얘기하다 늦어지면 안 돼지 않갔습네까."라는 말에 "아, 네, 네"하고 돌아서곤 했다. "남과 북이 화합해 제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기쁘게 생각함다"는 모범답안 정도만 들을 수 있었다. 표정은 경직돼 있었다. 관리위원회의 안내를 받아 기자를 포함한 일행들이 사진을 찍어가며 공장을 둘러보는 분위기였다. 자연스러움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슬그머니 일행들과 조금 떨어져봤더니 역시 표정부터 다른 이들이 눈에 띄었다. 의류 공장이었고 20~30대 여성 3~4명이 공동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일하기 재밌으세요?" "이렇게 언니들, 동생들이랑 같이 어울려 일하니까 재밌지요. 일은 재밌게 해야하는 거 아닙네까?" 그러면서 또 웃는다.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한테는 잘 안 어울릴 것 같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작업복만 입는 건 아님다. 작업복 안 입을 땐 미니스커트도 입고 고운 옷들 많이 입슴다." '예쁘다'보다는 '곱다'는 표현을 주로 쓴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출입국사무소 기념품 판매점의 직원이 "개성은 처음이십니까"라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자주 오라"고도 했다. "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돌아서니 왠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든 금지된 것은 열망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이들과 말을 섞어봤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경험이었다. 통일이 눈앞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설레던 봄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고 개성공단 가동은 중단됐다. 통일이 대박이라면, 통일과 멀어지는 것은 쪽박 아닐까. "또 뵙겠다"고 했던 약속이 자꾸 생각나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요즘이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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