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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흑백으로 보는 윤동주, 위험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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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동주', 자의식과의 투쟁 그리다 항일운동으로 급선회
윤동주의 시 입맛에 맞게 나열...영화적으로 허용되지만 반복되면 왜곡

[이종길의 영화읽기]흑백으로 보는 윤동주, 위험한 규정 영화 '동주'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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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흑백영화는 피사체의 색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 시와 닮았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동주'는 흑백영화다.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렸다. 그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저항시인 또는 회의적 휴머니스트. 마광수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65)는 '윤동주 연구(1986년)'에서 "윤동주의 저항은 끊임없는 자기 내면 또는 본능적 자의식과의 투쟁이었다. 이러한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윤동주가 목표했던 저항의 대상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압박이나 조국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고 보았다.


'동주'는 중반까지 이러한 시각에 비교적 충실하다. 윤동주와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와의 대비 구도로 극적 긴장도 높다. 소설가 송우혜(69)의 저서 '윤동주 평전(1998년)'을 통해 대중에 소개된 송몽규는 열여덟 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수재로 1935년 산동의 제남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43년 '재교토 조선인학생민족주의그룹사건' 혐의로 검거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1945년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준익 감독(57)은 '참회록'을 제외하고 윤동주의 아홉 작품에 등장하는 시어 '부끄러움'을 그의 영향에서 나온 것처럼 묘사했다. 친구이자 사촌에게서 느끼는 열등감은 윤동주의 인간적인 면모를 한층 도드라지게 한다. 그러나 당시의 표피적 정서나 이데올로기를 쫓지 않고 스스로의 심경을 담담히 고백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설명되기에는 부족하다. 이 감독은 이 근원을 찾는데 따로 신을 할애하지 않는다. 윤동주가 문학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 빠져있는 셈이다.

[이종길의 영화읽기]흑백으로 보는 윤동주, 위험한 규정 영화 '동주' 스틸 컷


이 감독은 영화를 만든 이유를 묻자 "일본의 군국주의, 제국주의 등에 강렬한 화살을 쏘고 싶었다"고 했다. 가해자의 모순을 파헤치는 서술은 대체로 깔끔하다. 고등형사의 심문과 윤동주의 회상을 적절하게 교차시킨다. 특히 윤동주가 고등형사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신에서는 비장함까지 엿보인다. 그런데 이 감독은 절정에서 윤동주를 항일운동가로 규정해버린다. 고등형사의 심문에 윤동주와 송몽규가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데, 이 두 신을 똑같은 구도로 구성해 교차편집했다. 그러면서 두 친구의 지향점이 결국 하나였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이 감독은 "시를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윤동주는 행동하는 양심이며, 항일운동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 중반까지 윤동주에게 항일의 기운을 부여하지 않는다. 반일 감정을 가진 젊은이로 그리지만 이마저도 송몽규와의 대립으로 강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일본 유학을 떠난 이후도 다르지 않다. 릿쿄대에서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한 다카마츠 다카하루 교수에게 도움을 받지만 시집 출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윤동주를 연기한 배우 강하늘(26)은 "항일운동가를 염두에 둔 연기를 주문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특정 색깔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힘을 빼고 연기했다"고 했다.


역사적인 인물을 한 장면으로 규정한다면 매우 위험하다. 이 감독은 전작 '사도(2015년)'에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비슷한 접근을 했다. 후반까지 영조를 모진 아버지로 그리다가 절정에서 내레이션으로 변명의 기회를 제공해 그동안의 흐름과 상반되는 부정(父情)을 강조했다. 이것은 진정한 부자의 화해가 아니다. 갈등을 무책임하게 봉합한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동주에서는 윤동주의 시마저 비슷한 방식으로 이용한다. 작성한 시점과 맞아떨어지는 시가 '참회록' 하나뿐이다. 이 감독은 나머지 시들을 극적 긴장을 극대화하거나 주제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입맛에 맞게 나열했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가 항일정신에 사로잡혀 작성된 듯한 착각을 준다. 이런 배치는 영화적으로 허용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반복되면 역사 왜곡이 된다. 마 교수는 "역사는 이상하게도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을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며 "윤동주는 바로 그러한 역사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흑백으로 보는 윤동주, 위험한 규정 영화 '동주' 스틸 컷


그렇다면 이 감독은 왜 동주를 흑백영화로 찍었을까. 그는 "실제로는 여러 색이 뒤섞여 엉망진창인 풍경이 흑백으로 전환한 모니터의 화면에는 너무나 정갈하게 담겼다. 70년 전 이야기가 흑백사진처럼 멈춰있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전체적인 콘트라스트(한 화면에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 간의 격차)는 약한 편이다. 인물을 깊이 있게 서술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명암의 극명한 대비에 기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주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특정한 시기에 갇히지 않는, 누구나 거쳤을 청춘의 보편적 서사로 풀었다. 인물 간 갈등이 크지 않다. 윤동주에 대한 고찰도 깊지 않다. 그래서 약한 콘트라스트는 영화가 놓치는 지점을 부각하고, 단조로운 서술을 더 밋밋하게 한다. 혹시 기술적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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