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1000만원씩 모두 9000만원을 배상하라." 13일 오후 서울동부지법 민사14부(부장판사 박창렬)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논란이 됐던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여타 명예훼손 민사 재판과 비교할 때 이례적인 고액이다.
박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는 사회적 통념과 거리가 먼 불편한 내용이 담겨져 문제가 됐다. 그는 책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신적 위안자' '군인과 동지적 관계'로 표현했다. 특히 검찰이 지적한 '자발적 매춘부' 등의 내용은 불편함을 넘어 '팩트'와도 거리가 멀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평가다. 박 교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분출한 이유다.
이에 박 교수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표현은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생각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자발적 매춘부라고 말하는 일본인들을 비판하기 위해 그 단어를 인용표시의 따옴표와 함께 적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교수는 이번 민사소송 패소로 향후 형사재판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사필귀정'이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국민 다수의 정서와 배치되는 주장을 펼친 학자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실제로 박 교수는 '학문의 자유', 일본 정부는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이번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박 교수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도로 '합리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재판부도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역사적 인물이 생존하는 경우라면 그들의 인격권 보호가 학문의 자유 보호보다 상대적으로 중시될 수 있다"고 판결 취지를 밝혔다.
형사재판은 민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박 교수를 향한 '1차 응징'이 짜릿함을 줬을지 모르지만,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소설가 장정일, 작가 유시민, 변호사 금태섭 등 지식인 192명이 박 교수 기소에 비판 성명을 낸 것은 그의 주장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사법부 결정이 역사 문제 일반에 대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선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법부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대응을 기대해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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