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27일 한국경제는 구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정치권 분열로 개혁에 실패함으로써 일본의 경제침체를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0~3.2%로 추산되지만 급속한 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 등으로 3%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한국은 신용등급도 상향조정되고 거시정책도 좋아서 당장 금융위기나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적지만, 구조적으로 역동성이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더 큰 위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제 한국의 성장률은 3%에서 서서히 하락해 일본처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면서 "안전하지만, 역동성이 없고 재미없는 투자처가 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구조적 저성장을 막으려면 서로 이해관계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양보를 통해 타협하고 빠르게 구조개혁을 진행해야 하는데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해 정책을 집행하는 게 어려운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도 1990년대 말 정치권이 내부적으로 분열하고 총리가 6개월∼1년에 한 차례씩 바뀌면서 10년간 어떠한 의사결정도 잘 안됐었다"면서 "한국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개혁시기를 놓쳐 일본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부동산 버블이 크지 않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이 상당히 개선된 게 일본과 다른 점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 국장은 일본의 현재 잠재성장률이 0.5%인데, 10∼20년 격차를 두고 고령화 등 경제·인구구조가 따라간다면, 한국도 10∼20년 후에는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만성적 저성장을 막으려면 단기적 재정·통화정책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헬조선(지옥처럼 혹독한 한국사회)'으로 축약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 보육, 교육, 서비스업 육성 등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한국의 가계부채와 관련, "경제에 부담이 되는 수준으로, 증가세가 계속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소비활성화에 제약이 되고 경제성장률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기업부채는 전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를 갚을 수 없는 이자보상배율 1 이하의 한계기업들이 상장회사의 20% 가량에 달하는데, 이들은 앞으로 금리가 상승하고 구조조정 압력을 받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올해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신흥국 부채를 꼽으면서, 미국의 금리정상화 과정이 진행되면 달러부채가 많은 신흥국들이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을수록, 외화표시 채권비중이 높을수록, 정치적으로 불안할수록 부도위기 가능성은 크다는 설명이다.
이 국장은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부채가 너무 많은데도 비효율적인 투자가 이어져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통화 긴축정책으로 전환한 반면, 유럽이나 일본은 통화완화정책을 이어가 '그레이트 다이버전스(Great Divergence)'가 발생한 것과 관련, "제3국은 금리 변동성이나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이 국장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G20(주요 20개국) 기획단장을 거쳐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다가 2014년 2월 한국인으로서는 최고위직인 IMF 아시아ㆍ태평양 담당국장에 임명됐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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