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찾아오지만 매번 또 가슴 설레는 12월 25일 성탄절. 화사한 불빛의 루미나리에로 단장한 오늘의 거리에서 끼니 잇기조차 힘들던 그시절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봅니다. 한푼두푼 아껴서 산 털모자 선물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던 그때 그녀도 생각나네요. 아시아경제에서 성탄 특집으로 옛날과 지금의 크리스마스를 비교해 봤습니다. 옛날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들어있으니 '예 구(舊)' 자를 써서 '구(舊)리스마스'라고나 할까요. 좋았던 그 때 그시절처럼 올해도 마냥 기쁘고 복된 성탄절 되세요.
1960년대 크리스마스는 야간 통행금지가 풀리는 유일한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브 명동 시내는 청춘 남녀들로 넘쳐났다. 크리스마스는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됐다. 정부 수립 초기 친미·친기독교적 분위기가 영향을 끼친 탓이다. 석가탄신일은 1975년에야 공휴일이 됐다. 당시 세대 별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인식은 달랐다. 1950~1960년 연작으로 출간된 최인훈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면 시대적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외박하겠다는 딸과 이를 꾸짖는 아버지와의 대화다.
"크리스마스면 예수가 난 날이라지. 예수교인이면 밤새 기도도 드리고 좀 즐겁게 오락도 섞어서 이 밤을 보내도 되련만 온 장안이 아니, 온 나라가 큰일이나 난 것처럼 야단이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창피한 일 아니니?"
"글쎄요."
"창피한 일이다. 정신이 성한 사람일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느냐. 넌 남의 제사에 가서 곡을 해본 적이 있느냐?"
"뭐 없어요."
"그것 봐라. 원래 옛날에는 종족마다 수호신이 있지 않았니? 옛날에 한 종족이 다른 종족에 굴복했다는 증거는 정복자의 신을 섬기는 것이었지."
크리스마스는 고등학생들의 탈선이 두드러지는 날이기도 했다. 1967년 12월 한 신문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고생의 임신율이 가장 높은 날이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 두 절기라고 보도했다. 모 여고 교사는 "17~18세 되어 보이는 보드라운 솜털의 여학생들이 머리를 약간 곱슬곱슬하게 구부리고 아이새도우를 발라 성년의 숙녀로 위증한다"며 "삼류 여관에서 성급한 인생을 모험하려는 여학생과 남대생을 훈계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기성세대는 크리스마스를 '크레이지마스'라고 부르며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1980~90년대 강남 유명 나이트클럽과 호텔 카페 등은 평소보다 몇 배 비싼 가격을 불렀음에도 젊은이들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1998년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 룸 기본 가격은 국산 양주 한 병과 과일 안주 한 접시를 크리스마스 이브엔 평소보다 20만원 더 높은 70만원으로 올렸지만 오후 3시경 20여개의 룸과 200여개의 테이블 대부분이 가득 찼다고 한다. 1999년 호텔에선 가면 댄스파티나 댄스 경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해외 여행객 증가로 크리스마스 내수 특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국내 주요 호텔과 레스토랑들은 가격을 평소보다 20~30% 더 올린 크리스마스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