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매우 특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네덜란드 국채금리는 600년 역사 이래 최저 수준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위스와 스웨덴의 중앙은행 금리는 이미 마이너스(-)이다. 물론 몇몇 나라에서 이미 마이너스 금리를 성공적으로 실험하고 있으니 문제 없을 것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화폐의 퇴장을 불러온다. 만약 예금금리가 -5%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은행에 돈을 맡기면 매년 5%씩 줄어든다면 누가 은행에 예금을 하겠는가? 예금하기 보다는 종이화폐로 보관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화폐가 퇴장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는 승수효과를 기본으로 하는 금융자본주의에게 심각한 위협이다.
화폐 퇴장에 대한 해법으로 최근 전자화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종이화폐를 없애고 전자화폐를 도입하면 마이너스 금리라도 은행에서 돈을 뺄 수 없기 때문에 해결책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전환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설사 전환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는 지극히 기술적인 부분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란 바로 버블을 뜻한다. 사람들은 돈의 가치가 사라지는 전자화폐 대신 실물자산을 보유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자산들마다 투기자금이 몰려들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산가격의 버블은 피할 수 없다. 물론 버블은 반드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현대 자본주의는 피할 곳이 없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뿐이다. 금리를 올릴 수 있도록 ‘성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역사는 이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로 생산성 혁명, 즉 산업혁명이 필요하다. 인류는 수천년 동안 연간 0.2%에 불과한 성장을 기록해왔다. 여기에 변화가 생긴 사건이 바로 1700년대에 있었던 산업혁명이다. 1차,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구 1인당 성장은 5%를 넘어섰다. 구석기시대 이후 수 만년 동안의 인류가 만든 경제성장 중 90% 이상이 1700년대 산업혁명 이후에 이룩된 것이라고 한다. 즉, 산업혁명은 이 세상에 처음으로 성장을 만들어준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역사를 보면 기술발전보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와 기득권의 생각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중국은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미 200~300여년 전,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대부분의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왕과 양반들은 이를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억압했다.
반면 18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었다. 중상주의와 상인계급이 대두했고, 프랑스대혁명(1789~1794)으로 봉건주의가 붕괴되고 있었다. 또한 2차 인클로저운동(1789~1794)으로 인한 빈농(貧農)들의 도시 유입은 풍부한 저가 노동력을 제공했으며, 도시화를 가속화시켜 산업혁명이 나타나기 좋은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현대에서도 증명된다. IT버블을 생각해보자. IT버블은 왜 1995년에 시작됐을까? 사실 인터넷은 그 이전부터 쓰이고 있었다. 1969년 미국 국방부는 아르파넷(AROANET)이라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사용했고, 1980년대 말에는 이미 대중들도 인터넷을 통해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도 1995년에서야 IT버블이 시작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넷스케이프의 상장과 통신법개정(1996)이다. 통신법개정은 기존 AT&T가 독점하던 미국 통신시장에 인터넷/케이블 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바이오주 랠리도 마찬가지이다. 왜 2013년부터 시작됐을까? 그 이유 중 하나로 ‘오바마케어’를 들 수 있다. 미국 사보험 제도 때문에 지병(성인병)이 있거나 희귀병이 있는 환자들은 가입을 거부당했지만 오바마케어로 보험적용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당뇨, 심혈관계 질병, 희귀병 등의 치료제에 대한 가치가 더 높아지게 된 것이다.
지금 사회는 1700년대 유럽처럼,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미국처럼 새로운 성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마이너스 금리로 내리는 통화정책으로는 위기를 빠져나가기 힘든 상황에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위기를 탈출하려는 각국 정부의 노력이다. 규제를 해소하거나,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성장단계에 진입한 기술들을 산업혁명으로 인도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테크놀로지 스타트업 기업들의 가치는 고평가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격적인 성장 궤도를 눈앞에 두고 있다. 테크놀로지 기업들은 다가올 산업혁명의 준비를 마쳤다. 어쩌면 부족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안수웅 SK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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