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미국 금리 인상 대비하겠다."
한국은행이 12일 기준금리를 현행 1.5%로 동결한 배경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국내 경기 하방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자 지금은 국제 금융시장 변동에 주목하며 자본유출 등 금융시장 불안에 대비할 때로 본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 자체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며 여타 신흥국들과 차별화된 흐름을 보일 것이란 게 한은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시장 불안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 수단이 있다고 자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혀 긴장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란 두 차례의 위기에 휘말렸던 경험이 있는 만큼 한은 내에서는 미국 금리인상과 관련된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며 대비 중이다. 기준금리 동결도 이 시나리오 중 하나다.
◆미국 기준금리, 어쨌든 오른다‥힘 빠진 기준금리 인하론= 시장에서 금통위 전부터 기준금리의 동결을 기정사실화 했던 것은 미국금리 인상 분위기가 다음 달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지난달 28일 성명서를 통해 "다음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한지에 대해 결정할 때 완전고용과 2% 물가 상승률 목표를 향한 진전을 평가할 것"이라고 평가한 후 나온 10월 고용지표가 다음 달 인상 관측에 힘을 실었다. 10월 비농업부문 취업자는 서비스부문을 중심으로 27만1000명 늘면서 시장 예상치 18만5000명을 웃돌았다. 실업률도 9월 5.1%에서 10월 5.0%로 낮아지며 2008년 4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로 이어진다.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이 개선됐더라고 하더라도 미국발 금리인상에 따른 외국인 유출을 막기는 불가피하다. 실제 9월 중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면서 지난 6~9월 중 외국인의 국내채권 보유잔액이 4조1000억원 줄었다. 이는 과거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신흥시장국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했던 지난 2013년 8~12월 중 감소 규모의 절반 수준이다. 당시 외국인의 국내채권 보유잔액은 5개월간 8조2000억원이 감소했었다.
만약 우리가 이번 달 금리를 낮춘 후 다음 달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면 한국과 미국의 국채 10년물 금리 역전을 고착화시켜 자본유출을 키울 수도 있다는 점도 금리 동결의 배경이 됐다. 기존 통화당국은 자본유출을 우려해 미국 금리보다 한국 금리를 1.0~1.5%포인트 정도 높게 설정했다. 하지만 최근엔 내외금리차가 되레 역전돼 자본 이탈의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실제 지난 11일 종가 기준 한국의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2.308%로,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 2.3301%보다 낮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12월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한은이 미국과 엇갈린 방향의 통화정책을 펼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부채·가계부채 경고음도 커져= 미국 금리 인상이란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금리를 추가 인하해야 한다는 뚜렷한 명분도 없었다. 수출의 지속적인 부진이란 불안감은 여전하지만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1.2% 성장했다. 9월 전 산업 생산도 54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나쁘지 않다. 10월 CCSI는 메르스 직전인 지난 5월과 같은 105를 기록했다.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금리 동결 배경이다. 지난달 말 현재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624조8000억원으로 한달 동안 9조원(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 양도분 포함)이나 늘었다. 이는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편제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월간 최대 증가폭이다. 기업대출 증가세도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달 말 기업대출 잔액은 729조5000억원으로 전월보다 9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 역시 작년 4월 9조6000억원 이후 1년6개월 만에 가장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충격파가 전해지면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란 쌍끌이 악재에 우리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
◆기준금리 현 수준 상당기간 유지될 듯= 다음 달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는 동결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된 시점에서 굳이 금리를 변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의 내수ㆍ소비 개선세가 지속되기 어려운 데다 중국 등 세계경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수출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며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리 한국은 지금 수준의 금리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론도 있다. 올 연말 이후 정책일몰 이후 소비가 급속히 감소하는 '소비절벽(소비 급락으로 경제에 충격을 주는 현상)'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수출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추가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HSBC는 소비자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내년 3분기까지 두 차례에 걸쳐 금리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경제 상항에 따라 금리가 조절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단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구조조정 같은 구조개혁을 통해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