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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꿀색' 입양문서에 쓰여있던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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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입양작가-국내작가 교류전' 참가, 만화가 전정식씨 인터뷰

"'피부색=꿀색' 입양문서에 쓰여있던 글자" 전정식 작품,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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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꿀색' 입양문서에 쓰여있던 글자"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전정식씨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엄마가 꼬마를 안고 있는 두 장의 그림. 하나는 벨기에 엄마를, 다른 하나는 상상 속 한국 엄마를 그렸다. 그리고 거대한 나무 아래 숱하게 엉켜있는 뿌리. 거기 꼬마가 서 있다. "내 뿌리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훗날 만화가로 성장하게 되는 꼬마가 인생을 걸쳐 고민하게 되는 화두다. '입양아',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은 어린 시절 자주 그를 외로움과 슬픔으로 내몰았다. 그래도 그에겐 그림이 있었다. 그림으로 상상 속 생모를 그리거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며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청소년기 '한국인'이란 사실이 싫어 차라리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던 '일본인'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지금 자유롭다.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 전정식(50, 융 에넹ㆍJung Henin)씨. 그는 프랑스어권에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만화작가다. 그의 작품 밑바탕에는 정체성과 버려짐, 뿌리 뽑힌 삶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다. 판타지 만화도 많이 그린다. 생애 처음 붓을 들고 수묵화 양식으로 만화를 그려 출판한 자전적 작품 '피부색깔=꿀색'이 지난 2012년 애니메이션으로 영화화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 작품만으로 전 세계 23곳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40여곳에서 초청상연회를 가진 이력이 있다.

전 작가가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를 앞두고 방한했다. 이번 전시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처럼 작가가 주로 참여해 온 행사와는 다르다. 국외 입양작가 서른 명과 같은 수의 국내 작가가 여는 합동 전시회다.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InKASㆍ인카스)에서 주관한다. 서울 소공동에 있는 인카스 사무실에서 4일 그를 만났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스케치와 일러스트 작품 10여점을 소개하고, '피부색깔=꿀색'도 상영한다. 불어 원제 'Couleur de peau : Miel'은 자신의 입양문서에 쓰여 있던 문구다. 동양인의 피부색을 그렇게 표현한 모양이다. 작가는 "입양되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스토리를 담기에 적합해 만화를 그리게 됐다. 혹시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다면 글을 썼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남대문 인근 호텔에서 묵고 있었다. 남대문은 다섯 살 때 그가 엄마를 잃고 방황했던 장소였다. 그곳에서 어떤 경찰관의 도움으로 홀트아동복지회로 보내졌다고 했다. 얼마 후 이미 아이가 네 명이나 있던 벨기에 가정에 입양됐다. 양부모는 작가가 일곱 살 무렵 한국 여자아이를 또 입양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자이거나 성인(聖人)처럼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고뭉치 '융'(작가의 벨기에 이름)에게 회초리를 들고 고함도 쳤던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작가는 "한국인이란 사실을 부인했다. 왜 한국은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냈을까. 화가 났다. 가족들이 잘해줬지만 외롭고 힘들었다. 열여덟살에는 쌀밥에다 칠리소스를 얹어 계속 먹었다. 나를 학대하는 방식이었다. 피를 토했고 배 안에서 구멍이 뚫렸다. 거의 죽을 뻔 했다"며 "입양된 아이들 중 목을 매거나 총을 쏴서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한국인이었던 내 여동생은 원인 모를 교통사고로 요절했다"고 했다.


"'피부색=꿀색' 입양문서에 쓰여있던 글자" 자신을 길러준 벨기에 엄마를 생각하며 그린 전정식 작가의 작품.


"'피부색=꿀색' 입양문서에 쓰여있던 글자" 어린시절 한국인 친모를 상상하며 그리워했던 작가의 드로잉 작품.


"'피부색=꿀색' 입양문서에 쓰여있던 글자" 자전적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작가의 드로잉 모습.


"'피부색=꿀색' 입양문서에 쓰여있던 글자" 작가의 어린시절 벨기에 형제자매들과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그런 어두운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양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작가는 "끝내 소통이 힘들 것 같던 엄마가 나를 돌봐주면서 '첫 번째 아이를 잃었던 적이 있는데, 그 아이가 바로 너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너는 내 아들이야'라며 처음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 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고 했다.


이제 그에게 한국인과 유럽인의 경계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얼굴 모르는 생모에게 사로잡혔던 생각들도 이제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용기가 생겼고 지난 2010년부터 영화제 등 행사 차 한국을 방문한 지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판소리와 같은 한국음악, 내공 있는 한국영화, 독특한 한국음식에 많이 끌린다"고 했다.


전 작가는 몇 주 뒤 디엔에이(DNA)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그동안 애니메이션 작품과 함께 작가의 얼굴이 국내에 알려지자, 작가의 친동생이라고 하는 누군가가 방송국으로 연락을 취해 왔다. 지난 주엔 모친일수도 있는 사람의 디엔에이 검사도 마무리됐다. 작가는 "전남 나주에서 내가 태어났다고 그랬다. 내 위에 형이 있다고 했다. 어렴풋이 형이 생각나기도 한다. 가족인지 확인할 가장 정확한 방법이 DNA 검사이기 때문에 그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작가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물론 기대감이 적진 않다. 그는 "입양아가 커서 혈육을 찾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생물학적 가족을 만나면 기쁘겠지만, 이미 나는 40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 지금은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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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전쟁이후 1958년부터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미국, 유럽 등지로 보내진 한국인 입양아 수에 대한 공식 통계는 총 15개국 약 17만 명으로 집계됐다. 비공식적으로는 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1970~1980년대 전 세계로 입양되는 아이들 중 한국 아이들이 3분의 2를 차지했다. 전 작가의 말처럼 이 같은 입양 역사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점차 잊혀진 분위기다. 그는 "입양에 관한 아픈 역사는 국가의 책임이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했다.


"보통 국외로 입양된 사람은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죠. 이번 전시는 입양아들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입양에 대한 역사를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남북한 이슈나 통일에 대한 생각도 잘 안하는 것 같아 아쉬웠어요." 전시는 오는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3층. 02-733-1981.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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