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014년 우리나라가 세계 158개국들 가운데 47번째로 행복하다고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는 1인당 국내총생산, 건강수명, 사회 보장에 대한 인식, 관용, 부패, 선택의 자유 등을 행복을 구성하는 척도로 평가를 했다. 이번 평가에서는 스위스가 1위, 2위는 아이슬란드, 3위는 덴마크 등 주로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반면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을 맞아 갤럽이 143개국을 대상으로 행복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긍정경험지수(Positive Experience Index)' 조사 결과를 보면 그 결과는 판이하다. 2014년 가장 행복한 나라는 1위가 과테말라, 2위는 콜롬비아가 차지하는 등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상위권을 독차지했고 스위스는 11위, 우리나라는 118위에 머물렀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평가한 지표와는 달리 전날 얼마나 웃었는지, 존중은 받았는지, 편히 쉬었는지,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은 많았는지 등 주관적인 지표들로 측정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국가로 소문난 부탄도 세계행복보고서에는 79위, 긍정경험지수는 82위를 차지하는 등 지표 구성에 따라 국가별 순위는 매우 상이하다. 이렇듯 절대성과 상대성 등 다면적 속성을 가진 행복의 구성요소를 정의하고 측정하기도 어렵지만, 아쉽게도 어떤 지표에서도 우리나라는 상위 수준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과학기술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매우 오래된 주제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이 인간의 행복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는 아직까지 없다. 물론 위의 두 가지 평가 데이터에도 과학기술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원문을 꼼꼼히 살펴봐도 명확하게 설명돼 있진 않지만, 과학기술이 해당 지표들의 수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 인터넷 이후 혁신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이미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전망과 함께 새로운 기술의 산물들이 일상생활, 업무 현장에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다. 아무리 적응력이 빠르다고 해도 이들은 필자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 무시 못할 스트레스 원인 중 하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 준 반면 핵무기, 자원고갈, 환경문제 등의 부작용을 동반했고 아쉽게도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드론과 로봇 등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가치가 높은 반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전쟁에 활용돼 무자비한 살상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고, 사물인터넷(IoT) 등은 해킹 피해에 대한 우려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의학의 발전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 수명과 기대 여명의 격차는 10년을 넘었지만, 소득과 교육 수준에 따라 건강 관련 삶의 질 격차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돈이 없으면 건강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환자 스스로 약물을 먹고 세상을 떠나는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이 허용된 스위스에 자살여행자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현상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행복과의 상관관계는 점차 한계에 도달했고, 점점 더 과학기술만으로 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의 발전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간 대부분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 추진 목표는 경제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정책의 초점은 경제발전에 집중돼 있었고 필자도 그 과정에 참여하면서 막연히 일자리와 건강 중심의 국민 행복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러나 '헬조선'이란 단어가 흉흉하게 떠도는 현시점에서 생각하면 국민의 삶에 질에 대한 이야기도 어쩌면 습관적이었을 뿐 구체적 문제제기와 진지한 논의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지 않나 싶다. 이제는 경제가 발전해야 국민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행복해야 경제가 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고 싶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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