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해 이민자 중 모범사례 꼽히지만
대입시험 만점자 아이비리그 불합격
기술직에 비해 낮은 경영자 비율 등 차별 존재
정치적 세력화가 중요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국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적용되는 일종의 사회적 고정관념이 있다. 바로 똑똑하고 부지런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워커홀릭이 된다는 것이다. 수학·과학을 잘하며 반에서 줄곧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아시아계 학생들은 '스마트 키즈'라고 불린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모범적인 소수인종(model minority)라고 언급되며 귀감이 되는 사례로 꼽히는 경우도 많다.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에게 A- 학점은 F 학점이다'라는 말은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대부분의 아시아계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A-만 받아도 낙제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성실하고 똑똑한 아시아인들'의 개념이 형성, 정착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성공의 역설(The Asian American Achievement Paradox)'을 저술한 한국계 미국인 사회학자 제니퍼 리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 교수는 이는 사회적 환경과 독특한 아시아의 문화, 개인적 역량 등이 상호작용을 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낸 결과라고 설명한다.
1965년 도입된 미국의 이민국적법은 고학력 전문직의 아시아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이렇게 이주한 아시아인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정보력, 의사소통 창구, 네트워킹 등으로 대변되는 소수인종 자산(ethnic capital)이 형성됐다.
이런 자산의 축적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자녀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여기에 이혼율이 낮고 가족 중심적인 아시아 문화와 교육·출세를 중시하는 유교적 배경, 기대에 부응하려는 자녀들의 노력 등이 결합돼 스마트 키즈, 귀감이 되는 소수인종이란 프레임이 형성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처럼 뛰어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 학교와 사회에서 역차별을 받는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만점, 전교 차석, 뛰어난 사회 활동 등으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중국계 학생 마이클 왕이 원서를 낸 아이비리그 대학들에서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게 대표적인 아시아인 차별 사례로 꼽힌다. 왕과 같은 사례가 늘면서 64개 아시아계 미국인 권익단체가 모여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아이비리그의 역차별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미 교육부에 보내기도 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모범적 아시아인들이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주변인'에 머물고 있는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은 학교에서 직장으로 이어진다.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라는 단어는 승진 기회가 제한되면서 직급이 높아질수록 아시아계를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일컫는다. 아시아인을 상징하는 대나무와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 천장을 조합해 만든 말이다. 한인 이민자 출신으로 투자은행 JP모건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제인 현이 지난 2005년 출간한 '대나무 천장 부수기'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했다.
상대적으로 개방적 문화를 갖고 있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 역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가 구글·야후·인텔·휼렛팩커드(HP)·링크드인 등 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인력 실태 보고서를 분석해본 결과 아시아계는 기술직에서 27%의 비중을 차지했지만 관리자급에는 19%에 그쳤고 경영자급에서는 14%로 직급이 올라 갈수록 더 감소했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지난해 말 기준 세계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중에서도 아시아계는 10명에 불과했다. 2000년 8명에서 2명 더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이 기간 여성 CEO는 4명에서 24명으로 6배 급증했다.
정치권과 법조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미국 의회(상·하원)에서 아시아계 의원의 비중은 2.4%에 불과했다. 미국 로펌들에 등록된 변호사 중 아시아계의 비중은 11%이며 파트너는 3%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겪는 차별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세기 들어 미 명문대들이 소수인종 입학 쿼터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던 배경에는 '똑똑한 유대계' 학생들이 급증한 데 대한 우려가 작용했다. 최근에는 그 적용 대상이 유대계에서 아시아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형 로펌 듀언 모리스의 한국계 변호사 앤드루 한은 "아시아계가 미국 사회에서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이같은 분노는 정치력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대인들이 정치적으로 결집해 차별에서 벗어나는데 50년이 걸렸다"라고 덧붙였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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