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퍼지고 있는 '수저 계급론', 들어보셨나요? 부모의 재산에 따라 스스로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으로 나누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영어로는 'be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등의 표현에서 수저를 따와 각 계급 이름을 붙였습니다.
최근에는 흙수저에도 계급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고령토와 마사토가 다른 것처럼 흙이라고 해서 다 같은 흙이 아니라는 겁니다. SNS상의 수저 계급론을 살펴보면 자산 5000만원 미만 또는 가구 연 수입 2000만원 미만을 흙수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 수입 2000만원과 1000만원의 삶이 다르니 당연히 이 기준 안에서도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주목할 점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수저론이 일종의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일 일러스트 작가 '익킨'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몇 장의 이미지를 올렸습니다. 내용은 뜨거운 불 속에서 은도 녹고, 금도 녹았지만 흙은 버텨 아름다운 도자기로 태어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버티느냐니까 버티자"고 했습니다. 가마 속 고온처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삶을 짓누르고 있는 흙수저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응원으로 보입니다. 공감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보면 이를 놓고 재기 넘치는 말장난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버텨서 도자기가 돼도 금이나 은보다 가치가 없다", "도자기 되는 흙은 따로 있다는 것이 함정", "금은 녹아도 금, 흙은 도자기가 돼도 깨지면 다시 흙", "금수저와 은수저는 빠지고 흙수저만 불가마에 들어간다", "고령토가 아닌 마사토는 도자기가 될 수 없다. 흙수저 사이에도 계급이 생긴다" 등등입니다. 놀이처럼 이어지는 자조 섞인 반응들 속에는 단지 참고, 버티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수저 계급론이 놀이로 수용되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유행하고 있는 흙수저 빙고게임, 금수저 빙고게임이 대표적입니다. 금수저 빙고과 흙수저 빙고는 각각 25개의 항목이 있는데 자신과 일치하는 것이 7개 이상이면 금수저이거나 흙수저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이 빙고게임은 항목과 문항 수를 바꿔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뼈아프게 반영하고 있는 수저 계급론이 놀이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화이론에서 놀이는 단순히 웃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이를 '카니발 이론'으로 설명했습니다. 사순절을 앞두고 벌어지는 카니발은 사회구조나 계급 등이 무시되고 익살과 욕이 난무하는 전복의 공간이었습니다. 때문에 카니발은 기존의 질서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수저 계급론에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차별, 취업난 등 뒤엎고 싶은 젊은 세대들의 카니발이 반영돼 있는 것이 아닐까요.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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