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전 세계적으로 오페라 관람객이 줄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유명 오페라하우스들은 무대를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방식으로 난관을 타개하고자 한다. 18~19세기를 그리던 전통 오페라를 현대적 관점에 맞춰 연출하는 것이 그 노력의 일환이다. 척박해진 국내 오페라 환경을 딛고 오페라 현대화에 도전장을 내민다."(정은숙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
성남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을 맞아 현대화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18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주세페 베르디의 세 막짜리 오페라로, 1853년 3월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소설 '동백꽃 아가씨(La Dame aux Camelias)'가 원작이다. 창녀 비올레타와 귀족 남성 알프레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다.
2010년 대한민국오페라 대상에서 연출상을 받은 장영아(43) 씨가 연출한다. 장 씨는 지난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베르디는 '동시대성'을 강조한 인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품은 점점 동시대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재연과 고증이 아닌 현대적 감성 위에 미래적 느낌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비올레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리나 룽구(35)는 레이스로 장식한 드레스 대신 새빨간 미니 원피스와 구두를 신는다. 알프레도를 연기하는 테너 정호윤(38)은 금장 단추로 장식한 무거운 자켓을 벗고 셔츠에 가디건을 두른다. 장영아 씨는 "관객에게 더욱 익숙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창녀들과 귀족들이 어울려 먹고 마시던 파리의 살롱은 유람선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라 트라비아타'의 현대화 시도는 외적 변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장영아 씨는 "지금까지 여주인공은 국내 관객에게 '이별에 아파하며 죽음에 이르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다가갔다"며 "이번 공연에서는 사랑 이야기에 가린 비올레타의 매춘부로서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고 했다.
연출의 의도는 귀족 남성들이 비올레타에게 성적 폭력을 가하거나 그를 탐하면서도 멸시하는 장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비올레타는 외모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춤과 노래 솜씨가 뛰어나고 지식과 교양도 갖춘 인물이다. 그럼에도 매춘부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는다. 장 씨는 "여주인공의 인간적인 외로움과 내적 갈등들이 부각될 것"이라고 했다.
이리나 룽구가 비올레타의 양면성을 표현할 적임자로 뽑혔다. 화려한 외모 덕분에 이 역할을 110차례나 맡았다. 그는 "가장 좋아하면서도 많이 한 역할"이라며 "비올레타의 삶에 공감한다"고 했다. "소프라노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고되고 힘들다. 지금 가장 귀여울 다섯 살 아들과 떨어져 살듯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라 트라비아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다. 유럽 오페라 중 국내 무대에 처음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1948년 1월 16일 서울 명동 국립극장(당시는 시공관)에서 '춘희(椿姬)'라는 제목으로 공연했다. 조선오페라협회(국제오페라사의 전신)가 주최했고 소프라노 김자경이 비올레타, 테너 이인선이 알프레도를 맡았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 역을 맡은 바리톤 유동직(43)은 "'너무 뻔하지 않냐'는 말들도 하지만 잘 팔리는 물건에는 이유가 있다"며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이야기하면서도 무대를 재창조할 것"이라고 했다. 만 13세 이상. 문의 031-783-8000.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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