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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전세난 방치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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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아파트나 집값의 폭등은 선량한 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앗아가는 가증할 일이다. 30평 되는 아파트가 1억원을 넘고 대형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1000만원을 넘는 것은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서민들의 미래와 꿈과 설계를 빼앗아가고 좌절감을 안겨주는 이런 부동산 투기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것이 나의 의지다.”


서민을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집 없는 입장에서는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도 들겠다. 하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민의 민주화 열망을 짓이긴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9년 4월, 주택관계장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선거 때 ‘보통사람’이라고 우겨댔던 그는 그 유명한 ‘주택 200만호 건설’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현재 강남의 아파트 값은 10억원을 넘나든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말한 ‘선량한 시민의 내 집 마련 꿈’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으로 해도 5억원을 넘는데 근로자 평균 연봉은 3600만원가량이다.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14년이 걸려야 살 수 있다. 안 먹고 안 입고는 못 사니까, 서울에서 월급 모아 내 집 마련하기는 아득한 일이 됐다. '부의 세습' 없이는 살기 힘든 곳이 돼 가는 것이다.


최근 몇 년동안은 전셋값마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사상 최악’은 매년 갱신되고 있으며 서민들은 숨이 차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래서 수십만원의 월세로 겨우 달랬다느니, 집에 비가 새도 보증금 올려달랄까봐 집주인한테 연락도 못한다느니 하는 고단한 사정들이 차고 넘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토록 주택 건설에 매진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집권한 이후 매년 집값과 전셋값이 10% 이상 크게 치솟자 정권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민심이 흉흉해졌기 때문이다. 강남 부유층 아파트에서 일하는 파출부들 사이에서는 ‘세상이 바뀌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몇 호는 파출부 누구 몫이다’는 식의 괴담이 돌았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선 ‘이대로 가면 혁명이 일어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지금은 혁명을 걱정할 시대가 아니기 때문일까. 전세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이기만 하다. 규제를 풀어 집값을 떠받치는 시장 활성화에만 공을 들이는 것 같다.


임대료 인상 폭을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나 2년으로 돼 있는 계약기간 종료 후에도 1회에 한해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논의는 수년째 답보 상태에 있다. 정부가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는동안 전셋값은 쉼없이 올라 서울의 경우 평균 3억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임대료를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을 실시하거나 표준임대료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계약갱신시 행정기관에 의해 임대료를 조정하는 안정화 정책을 펴고 있다.


독일 베를린은 지난 6월 임대료를 지역 평균의 10%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고, 미국 뉴욕시도 ‘집세 안정화’ 프로그램을 도입해 임대료 인상 폭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의 일각에서는 상한제는 우선 제쳐두고 계약갱신청구권이라도 우선 도입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대료 인상률을 연 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2년만 지나면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 되는 폐해를 막자는 취지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의 어려움에는 주택 문제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사회 전체적인 활력을 저해한다. 정부가 보다 전향적인 전월세 대책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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