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열기가 뜨거워 보인다. 바닥 끝까지 처진 소비심리를 정부가 살려보고자 이례적으로 내린 '처방'인 탓에 재계도 대규모 할인 이벤트에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다.
대형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은 마진을 '제로' 수준까지 내릴 것을 주문하는 등 이벤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경쟁이라도 하듯 절치부심하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짧은 기간 만에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벤트가 시작된 지난 첫 주 국내 주요 대형백화점의 판매 실적이 전년동기보다 3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긍정적인 수치가 나오자 '상승 효과'도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백화점을 중심으로 '노 마진', '명품 할인' 등 판 키우기 행사가 잇따르고 온ㆍ오프 유통 전 채널이 할인 행사를 벌이고 나섰다.
금융당국도 추석 명절에 이어 오는 14일까지 이어지는 할인전 효과로 10월 소비자심리지수가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으며 화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크리스마스 전후로 한 연말 특수까지 이어져 내수가 진바닥을 완전히 탈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곁들이고 있다. 위기 때 돋보이는 한국 특유의 결집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세심하게 준비한 기획이 아니었던 만큼 흠집이 있게 마련이다. 제조업체가 재고품을 집중적으로 쏟아낼 시기 등을 고려하지 않아 유통업체 일변도로 희생이 강요되는 이벤트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제조업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블랙프라이데이가 떠들썩한 판매행사일 뿐 소비자들을 구매로 끌어들이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이익률이 감소한 가전업계의 경우 정부 주도의 무리한 판매행사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대기업 제조업체도 사정이 이러한데 중소기업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은 두말할 나위도 없어 보인다. 산업 생태계에서 '을'에 위치인 납품업체의 경우 할인행사는 두려움 그 자체다.
유통업체들이 동반성장을 겨냥해 마진 축소에 적극 나서고 있다지만 이들에게 물건을 납품해 연명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은 코웃음을 친다.
모 중소기업 대표는 "통상 백화점이 70% 세일을 한다치면 납품 업체가 63%, 백화점이 7% 부담하는 식으로 거래가 되는 게 불문율"이라며 "블랙프라이데이를 정부에서 권유해 진행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산업현장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사후에라도 잘 살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보다 월등히 높은 30%대 백화점 입점 수수료를 감당하는 처지에 있는 중소 납품업체들이 할인전에서 제 몫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다. 유통업체의 갑질은 수수료 뿐만이 아니다. 유통업계 대표적 '손톱 밑 가시'로 지적되고 있는 특정매입거래(상품 판매분에 대한 대금만 납품업체에 지급하는 거래) 관행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다.
빡빡한 경영환경에서 할인 부담에 노출된 대형 제조업체들도 하청 업체에 희생을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
동반성장에 대한 인식이 재계에 고루 퍼진건 사실이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지난 2010년 이후 '훨씬 좋아졌다'는 응답이 40%를 넘었다. 이러한 인식이 더욱 확산되기 위해서는 매머드 할인 이벤트를 기획한 정부에서 유시유종의 자세로 이익이든 부담이든 '균형 분배' 여부를 세심히 들여다봐야할 일이다.
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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