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돌고 도는 게 역사라더니 그 말이 딱 들어 맞다.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 후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한국 경제 위기설 얘기다.
미국의 금리인상 이슈와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맞물리며 낳았던 '2015년 9월 위기설'이 10월의 시작과 함께 약발이 끝났는가 했더니 어느덧 2017년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함께 중국경제의 추락으로 경상수지 마저 악화된다면 외화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게 2017년 위기설의 실체다.
돌아보면 한국 경제의 위기설은 지루할 정도로 반복된다. 시작점은 2008년 9월이었다. 당시 위기설의 요체는 단기외채 상환이 9월에 집중되고 증시에서 셀 코리아에 주력하고 있는 외국인이 일제히 상환을 요구하면서 제2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오리라는 것이었다. 때마침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서 한국의 위기를 강조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며 위기설을 부추겼다. 정부는 '실체없는 위기설'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까지 겹치면서 시장의 공포감은 더욱 커졌다. 실제 리먼브라더스 사태 후 외환보유액 급감으로 한국 경제는 물론 전 세계가 긴박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경제를 괴롭혔던 9월 위기설은 10월, 11월로 달력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안도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6개월 후 '3월 위기설'(2009년)로 또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본계 자금의 만기가 집중된 상태서 대규모의 은행권 외화차입금 만기 도래 등으로 다시 한번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여기에 동유럽발 금융위기도 3월 위기설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했다. 물론 이 때에도 정부가 실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소방수로 나섰지만 위기설은 마치 유령처럼 떠돌며 확대 재생산됐다. 이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줬다. 위기설로 지목됐던 2009년 3월이 별다른 일 없이 마무리되자 조용히 누그러졌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3월ㆍ9월 위기설은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될때마다 꼭 반복됐다. 2012년 3월 위기설, 2013년 9월 위기설, 2015년 9월 위기설식으로 말이다. 그럴 때 마다 정부는 각종 경제지표를 근거로 들며 가능성이 낮다고 진화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같은 위기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각종 악재가 해결은커녕 더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가계는 물론 기업, 정부의 빚이 폭증하면서 한국 경제를 뒤흔들 뇌관으로 부상했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나홀로 이끌었던 수출도 동력을 잃었다. 당장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에 차마 '구조조정'이란 메스를 꺼내들지 못한 탓이 컸다.
'이미 알려진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는 속설이 있다. 이 속설처럼 위기설이 그저 기우에 그치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마침 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의 대책안을 마련중이라고 한다. 지금 고통을 동반하는 수술을 시작하지 않으면 괴담처럼 양산되고 있는 위기설이 정말 현실화될 수 있다. 우린 이미 1997년 IMF 외환위기란 쓰라린 경험도 했지 않은가. 지난 8년간 대외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번번이 우리를 괴롭혔던 위기설에서 이젠 자유로워 질 때도 됐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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