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공시지원금 상한제 폐지요? 그건 영업 현장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거긴 전쟁터예요."
공시지원금 상한제를 없애는 것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이동통신사의 임원은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시지원금 상한제를 없애는 순간 바로 옛날의 진흙탕 싸움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동통신단말장치유통구조에 관한 법(단말기유통법)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아직 시장에 정착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과연 그럴까? 단통법 정착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바로 1일부터 시작되는 SK텔레콤의 영업정지다. SK텔레콤은 지난 3월 단말기유통법 위반으로 영업정지 1주일과 과징금 235억원을 부과 받았다. 영업정지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지다 드디어 이번에 시행된다. 공교롭게도 단통법이 시행된 지 딱 1년이 되는 때 단통법 위반으로 첫 영업정지를 맞게 됐다. 단통법 위반으로 생긴 영업정지가 오히려 시장 과열을 불러오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SK텔레콤의 영업정지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고조됐다. 경쟁사의 영업정지 기간을 틈타 가입자 유치 작전이 극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SK텔레콤의 근심도 커졌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많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눈이 시뻘겋게 쳐다보고 있는데 어떻게시장이 과열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단통법 1년이 되는 시점에 단통법을 위반했다간 괘씸죄에 걸릴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은근히 시장이 과열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 기회에 스마트폰을 바꾸기 위해 신도림테크노마트 등 집단 전자상가에 다녀왔다는 후기가 자주 눈에 띄었다.
SK텔레콤의 영업정지를 앞두고 이동통신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는 것은 맞는 듯하다. 평소보다 페이백(공시지원금과 별도로 스마트폰 구입 후 통장으로 입금해주는 금액)이 늘은 것으로 파악된다. 아직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번 주말이 남아있다.
단말기유통법을 주도했던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단통법 1년을 앞두고 그 효과를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각종 수치를 제시하며 이용자 차별이 해소되고 시장이 안정됐으며 소비자의 통신요금 부담이 완화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단통법의 효과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단통법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자화자찬은 오히려 언론과 소비자의 반감을 사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단통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공시지원금 상한제를 꼽고 있다. 이통사의 지원금 규모를 정부가 지정하는 제도로 대표적인 반시장주의 제도로 꼽힌다. 아무리 고가 요금제를 선택해도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33만원이다.
이에 대한 불만이 늘자 이통사들은 유통점에 주는 인센티브를 늘리는 편법을 사용한다. 인센티브는 페이백 형태로 소비자에게 지급된다. 이마저도 방통위가 일정 금액(약 30만원)이상 못주게 하고 있다. 규제가 새로운 규제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공시지원금 상한제도는 3년 일몰제다. 그 이전에라도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정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직 단통법이 시장에 안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이통사의 임원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입이 침에 마르도록 단통법의 효과를 강조하는 정부는 아직도 시장을 믿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SK텔레콤 영업정지 기간을 어떻게 넘기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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