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통기타의 선율과 사랑의 여러 빛깔
가을은 수확과 책의 계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랑을 그리는 계절이다. 시인 문태준은 노래한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이 오면 액션 영화가 물러난 스크린에 로맨스 영화들이 앉는다. 가을에 개봉했던 존 카니 감독의 <원스(Once)>와 <비긴 어게인(Begin Again)>도 로맨스 영화다. 동시에 뛰어난 음악영화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사랑을 보내고 그리워하고 노래한다. 전문 뮤지션들이 출연한 두 영화의 수록곡들은 아름답고 일관된 정서를 관통한다. 두 앨범의 주제는 사랑의 여러 빛깔이다.
<원스>의 주연이자 OST를 프로듀스한 아일랜드 뮤지션 글랜 핸사드는 통기타의 따듯한 매력을 잘 살렸다. 모든 곡에 청아한 매력이 있다. 9월이면 라디오에서 종종 들리는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는 가을의 고전이 될 만큼 아름답다. "너는 하늘에서 온 게 틀림없어"라고 노래하는 ' 폴른 프롬 더 스카이(Fallen from the sky)'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그러나 대체로 <원스>에서 읽히는 사랑은 원망과 간절함이다. '리브(Leave)'는 실연한 자의 절규다. 떠난 연인의 동영상을 보며 '라이(Lies)'를 노래하는 핸사드의 처절한 보컬은 쉽게 잊기 어렵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부른 '이프 유 원트 미(If You Want me)'의 스산함 역시 강렬하다.
<비긴 어게인>에서는 주연배우 키이라 나이틀리의 나긋하고 선명한 보컬이 그녀가 참여한 모든 곡에서 빛을 발한다. '어 스텝 유 캔트 테이크 백(A Step You can't take back)'과 '라이크 어 풀(Like a fool)'처럼 통기타와 피아노가 중심을 잡은 곡들이 대표적이다. 마룬5(Maroon 5)의 애덤 리바인이 부른 '로스트 스타즈(Lost Stars)'는 잔잔하게 시작하여 격정적인 후반부로 도약하는 극적인 전개가 돋보인다. 록음악 '텔 미 이프 유 워너 고 홈(Tell me if you wanna go home)'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일렉트릭 기타솔로는 단순하지만 박력이 있다.
이렇게 두 앨범은 닮은 듯 다른데, 이는 영화의 내용과도 관련이 있다. <원스>는 연인을 잃은 진공청소기 수리공과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이야기다.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는 주인공들의 처지는 투박한 울림이 있는 그들의 음악과 잘 어울린다. <원스>의 핸사드가 너무나도 낡은 기타를 연주하는 반면 <비긴 어게인>의 나이틀리는 마틴 사의 고급 기타를 들고 다닌다. 돌아갈 곳이 있고 도와주는 친구-그것도 슈퍼스타인-가 있는 주인공들의 무대는 뉴욕이다. 이들의 사랑 노래가 당차고 세련된 것도 당연하다.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는 때로 진부하다. 대중음악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랑은 젊은 남녀의 전유물에 그치고 '그립다'와 '행복하다'는 두 언어에 갇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두 앨범의 사랑노래들은 다채롭고 진솔하며 서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빛을 낸다. 그래서 듣는 사람을 영화로 이끌기도 한다. 존 카니의 차기작을 고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는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훌륭한 음악을 함께 선사하기 때문이다.
■ '디스코피아'는…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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