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인민해방군 퍼레이드(열병식)를 참관했다. 65년 전 전쟁터에서 마주했던 국가의 군사력 과시 행사에 한국 대통령이 최고 귀빈으로 참석한 것은 달라진 한중관계 및 동북아 안보지형의 급변을 상징한다.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한중 밀월관계가 전통적 한미일 안보공조와 충돌하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외교를 펼치는 것은 열병식 참석이 박 대통령에게 지운 가볍지 않은 짐이다.
박 대통령은 현지 시간 3일 오전 10시부터 열병식 70분을 포함해 총 90분간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펼쳐진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30개국 지도자들과 톈안먼 성루에 올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참관했다. 시 주석 오른쪽 옆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 다음 박 대통령이 위치했다. 60년 전 같은 장소, 같은 행사에는 김일성 북한 주석이 마오쩌둥 중국 주석과 나란히 열병식을 지켜봤었다.
70발의 예포 발사와 함께 막을 올린 기념행사는 시 주석의 연설로 시작됐다. 시 주석은 이번 열병식이 중국 정부의 정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며, 중국의 부흥과 세계평화 발전에 매우 깊은 뜻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열병식은 평화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며 2차 대전 종전의 의미와 교훈을 되새겨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 대통령은 기념행사에 앞서 진행된 단체 기념촬영 행사에서 시 주석뿐 아니라 푸틴 대통령 등 외국 정상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북한 최 비서와 접촉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최 비서는 전날 시 주석 주최 환영만찬에도 함께 참석했으나 조우하지 않았다.
열병식은 진입ㆍ행진ㆍ사열ㆍ분열ㆍ해산 등 5단계로 70분간 진행됐다. 헬리콥터 70대가 전승 70주년을 상징해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전폭기들이 삼각 편대로 비행했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핵미사일ㆍ신형미사일 등 7종의 미사일을 선보였다. 열병식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7개 군단, 제2포병(미사일부대), 무장경찰 부대, 항일전쟁 노병부대, 11개국이 파견한 사열부대 등 총 1만2000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이번 열병식은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과시적 성격이 있다.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 우방국 모두가 정상급 참석을 거부한 이유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중국과 밀착해야 하지만, 이런 행보가 한ㆍ미ㆍ일 3각 공조의 중요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란 점을 서방에 확신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 대통령이 2일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으로부터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연내 개최를 확인 받은 것은, 박 대통령이 미ㆍ중 두 세력 사이에서 주도적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줄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기념행사 후 오찬 리셉션에 참석한 뒤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로 이동한다. 박 대통령은 4일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하고 동포 오찬간담회, 한ㆍ중 비즈니스포럼 등 일정을 소화한 뒤 4일 오후 늦게 귀국한다.
베이징(중국)=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