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인재 벨트가 있다. 우수한 인재에 지리적 한계선이 있다는 말이다. 기업에서 인력을 채용할 때 연구개발 인재는 양재까지, 엔지니어는 수원과 오산까지만 지원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기업은 본사와 연구개발 조직을 서울에 설립하고, 핵심 생산시설을 수도권이나 근접지역에 짓는다. 지역에도 좋은 취업 자리가 있지만 우수한 인재가 취업을 위해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가는 경우는 드물고, 그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안타깝게도 인재 벨트는 더 강화되는 추세다. 창업 붐은 대개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지역의 일부 대학은 생존을 위해 캠퍼스를 수도권으로 이전한다. 최근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여 학생 충원율이나 취업률을 지표로 대학 정원을 감축한다고 발표하자 학생 모집을 늘리기 위해 지역 대학이 자구책으로 택한 일이다.
지역 경제가 발전하려면 지역에서 인재를 키우고, 우수한 인재가 지역의 기업인이나 지도자로 성장하는 선순환 고리가 필요하다. 이는 지역주의나 연고주의와 같은 폐쇄적 방식을 뜻하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개방형 선순환, 즉 지역 경제의 특정 목표를 중심으로 인재가 모이고 또 지역에서의 성장을 발판으로 지역 밖으로 진출하는 인재의 유동성(mobility) 증가에 기반한 성장을 뜻한다.
이러한 선순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다른 무엇보다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의 우수한 교육, 연구, 서비스 기능이 지역 경제와 맞물려 돌아갈 때 지역의 성장판이 열린다. 이것은 선진국의 주요 지역들이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독일의 대학은 지역의 기업과 연구소를 연결하는 혁신 클러스터의 중심지로 기능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대학은 그러한 기능을 하기 어렵다. 지역에서 교육한 인재를 수도권으로 취직시키기 위한 교육, 중앙 정부가 설정한 성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구,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식 서비스시장에서의 경쟁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지역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고등교육 모델의 한계로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주도의 고등교육 모델은 해방 후 경제가 어렵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자원과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앙 정부가 대학 행정을 주관하는 일은 당시 고등교육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렇게 형성된 국가 주도성은 대학의 생태계가 복잡해지고 대학의 시대적 역할이 변화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지속된다. 중앙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대학의 설립, 국고 지원금의 교부, 대학 총장의 선출, 입시 제도, 학생 및 교원의 정원, 학과 및 단과대학의 설치, 대학 평가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에 고등교육 모델이 도입될 때 미국의 주립대학 모델이 벤치마킹 대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대학이 미국의 주립대학처럼 종합대학으로 만들어졌다. 당시는 지방자치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국가가 설립주체가 되거나 중앙 정부의 지원에 의존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로로 우리나라 대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국립'이거나 중앙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지방자치 20년, 과거 국가 차원에서 중시되던 정책과 제도를 지역의 관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로서 대학이 지역의 인재 중심지가 되도록 고등교육 정책의 변화를 추구하는 문제도 고려해 볼 만하다. 기업인 사이에서 인재 벨트와 같은 하소연이 나오는 것은 지역 경제가 보내는 위험 신호다. 지역에서 인재를 키우는 곳이 서울만 바라봐야 한다면 그 지역 경제와 사회에 무슨 기여를 하겠는가.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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