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지난주 국내증시 최대 이슈는 단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 성사 여부였다. 단순한 두 회사의 합병건이라면 큰 주목을 받지 못했겠지만 두 회사의 합병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선 및 경영권 승계가 걸린 중요한 사안이었다.
더구나 미국계 헤지펀드사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면서 외국계 헤지펀드사의 경영권 위협에서 국내기업이 이를 방어하는 구도로 변모했다. 외세 대 반외세간 대결로 굳어지면서 국내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애국심이 강조되기까지했다.
17일 개최된 삼성물산의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전체 83%가 넘는 참석률에 70% 가까운 찬성 속에 통과되면서 분쟁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상 취약점이 드러난 안좋은 사례가 됐다. 앞으로도 이런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은 언제든 재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엘리엇과 삼성그룹간의 주주전쟁을 한장으로 표현해주는 타로카드는 '황제'카드다. 그림을 자세히보면 황제는 왕관을 쓰고 왕권을 상징하는 홀을 들고 있지만 이제 막 권좌에 앉은 모습이다. 갑옷을 입고 칼도 미처 칼집에 꽃지 못하고 들고 있으며 군화를 신고 있다.
이는 정통 계승으로 이어진 황제의 자리라고 해도 악전고투 속에서 그 자리에 앉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리가 자리인만큼 그를 위협하는 크고 작은 요인들과 돌발변수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칼을 칼집에 아직 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카드는 그래서 강력한 권력과 실행력, 의지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고난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도 함께 상징한다.
엘리엇과의 53일간의 분쟁 역시 삼성에게 있어서 경영권 승계 구도에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비율인 1:0.35는 지나치게 낮은 비율이며 삼성물산의 가치가 너무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모두 끌어안아야할 것이라는 논리는 큰 반향을 몰고 왔고 이에따라 삼성물산 주식의 큰 손인 국민연금 및 기관뿐만 아니라 대다수 부동층이었던 개인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양자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단기적으로 이번 합병 성사 결과가 엘리엇의 주장처럼 손해로 보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이익이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다수의 개인투자자 및 외국계투자자들이 합병 찬성으로 돌아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이번 합병이 부결됐다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차질이 발생하며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등 삼성그룹주 전체에 부정적 영향이 컸을 것"이라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자회사로 있는 바이오계열사간의 연결과 이를 통해 나타날 경쟁력 강화 역시 투자자들이 합병의 중요한 이점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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