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현대, 젊은 감각의 기아…수출전선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
[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형제자매는 영원한 라이벌이라고도 한다. 한 부모 밑에 태어나 평생을 서로 부대끼며 경쟁 아닌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형제기업인 현대기아차도 마찬가지다.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되기 전에는 경쟁업체 관계었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경쟁을 했었고 편입이 된 이후에도 그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 그들의 경쟁이 더 많은 고객 확보와 시장점유율을 놓고 다툰 쟁탈전이었다면 현재의 경쟁은 둘이 같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서로에 대한 채찍질이다.
지난 15일 기아차 신형 K5의 공식 출시 행사에서는 앞서 출시된 쏘나타와의 경쟁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다른 수입차종과의 경쟁도 관심이었지만 형제인 쏘나타와의 경쟁구도에 가장 관심이 집중됐다. 앞서 이달 초 현대차는 1.7디젤과 1.6 터보를 추가해 7개 라인업을 갖춘 2016년형 쏘나타를 출시했다. 쏘나타와 K5는 동일한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이 적용돼 진정한 '형제'라 할 수 있다. 7월 두 모델이 연이어 출시되면서 중형 세단 시장에서의 형제간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K5 출시 행사장에서 앞서 출시된 쏘나타와 가격 등에 대한 사전협의가 있었냐는 질문에 기아차 관계자는 "계열사지만 엄연히 라이벌 관계"라며 "가격 정책 등은 서로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형 쏘나타와 동생 K5의 경쟁관계는 K5가 태어난 2010년 이후 줄곧 계속됐다. K5는 출시된 지 한달 만에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YF 쏘나타의 판매량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석 달간 쏘나타를 앞서며 숙명의 경쟁자가 탄생했음을 각인시켰다. 2011년에는 연간 판매 기준 쏘나타를 앞지르기도 하면서 서로 비등한 경쟁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쏘나타와 K5 뿐만 아니라 동급차종들은 대부분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7월 쏘나타와 K5가 중형 세단 시장에서 맞붙었고 8월에는 기아차 쏘렌토의 연식변경 모델이 나오면서 올초 출시된 현대차 싼타페 부분변경 모델과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이어 9월에는 기아차 신형 스포티지가 출시되며 지난 3월 출시된 신형 투싼과 경쟁에 나선다.
이처럼 같은 시장을 둔 동급 모델들의 경쟁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협력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창식 기아차 부사장(국내영업본부장)은 K5 출시 행사장에서 "K5와 쏘나타의 간섭효과를 피할 순 없겠지만 두 모델이 힘을 합쳐 수입차에 대응하고 중형세단 시장에서 등을 돌린 고객들을 다시 불러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형제간의 경쟁은 서로를 한층 더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형을 쫓고 있는 기아차의 성장세가 놀랍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미국 신차품질조사에서 최상위권에 나란히 브랜드를 올랐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JD파워가 발표한 2015년 신차품질조사(IQS)에서 기아차는 21개 브랜드 중 1위, 현대차가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현대차가 1위, 기아차가 3위를 차지했다. 양사의 품질 경쟁이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증거다. 이어 이달 초 미국 자동차 전문 컨설팅 조사업체인 오토퍼시픽이 발표한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는 기아차의 K9, K7, 쏘울, 스포티지와 현대차의 쏘나타가 차급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는 차량 개발에 있어 뼈대가 되는 플랫폼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으며 디자인을 제외한 연구개발의 주요 부분 또한 서로 통합돼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차량의 개성을 결정짓는 디자인에 있어서는 양사가 철저히 구분돼 차량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친환경차 개발에 있어서도 수소연료전지차는 현대차, 전기차는 기아차가 먼저 양산화를 주도하며 조금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브랜드 이미지에 있어서도 양사가 서로 다른 브랜드 전략을 바탕으로 고객을 비롯한 외부와 소통하고 있으며 영업, 마케팅 등 판매와 관련된 분야에서도 서로 간의 독자적인 전략 수립을 통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는 2009년 쏘나타와 투싼ix를 출시하면서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를 새롭게 적용했다. '유연한 역동성'을 의미하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조형언어인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선율, 매끄러운 조각과 같은 느낌의 유기적인 디자인으로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조화를 이루는 현대차의 디자인 미학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대차는 2013년 11월 신형 제네시스에 기존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이었던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보다 정제되고 품격 있는 디자인으로 한 단계 발전시킨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을 최초로 적용했다.
기아차는 2005년부터 디자인경영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시장에서 품질과 성능을 인정받기 시작한 기아차가 지속적인 성장과 도약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대차와 차별화된 기아차만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2006년 7월 디자인경영의 첫걸음으로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고 '직선의 단순화(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라는 기아차 디자인 방향을 제시했다.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라인을 만들어 내겠다'는 이 명제는 이후 출시된 기아의 신차들이 기아차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요한 지침이 됐다.
이후 기아차는 출시하는 차량에 패밀리 룩을 선보여 기아차만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기아차의 패밀리 룩은 호랑이 코와 입을 모티브로 한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으로 동물의 인상을 형상화함으로써 제품의 특성을 강조했다.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의 코와 입모양처럼 상하단 라인의 가운데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브랜드 전략면에서도 현대차와 기아차는 서로 다른 전략을 통해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모던 프리미엄'이라는 브랜드 방향성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늘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양적 성장에 걸맞는 질적 성장을 위한 브랜드 고급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 기아차는 보다 역동적이고 젊은 감각의 브랜드 이미지를 수립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젊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