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③]'대체방'과 '교환방'을 아시나요?

시계아이콘01분 43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大기획, 사람으로 보는 금융사회학③'여전히 괜찮은 vs 조금 괜찮은' 세대차이…'YES맨 시대'도 끝나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③]'대체방'과 '교환방'을 아시나요? -
AD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③]'대체방'과 '교환방'을 아시나요? -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배우자감으로 은행원에 메달을 걸어준다면 80년대 이전까지는 단연코 금메달이었다. 90년대에는 검사, 판사, 의사라는 '사(士)'자에 밀렸지만 그래도 은메달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동메달을 간신히 목에 걸고 있다. "그 동메달마저 싫다며 입사 몇년 안돼 은행을 박차고 떠나는 젊은이들이 지금은 부쩍 늘었다"고 A은행 부행장은 털어놨다. 그의 눈에 비친 은행원은 '여전히 괜찮은 직업'이지만 젊은 세대에는 '조금 괜찮은 직업'이다. '여전히'와 '조금'의 격차는 은행원을 바라보는 달라진 세태를 반영한다.


한때 은행원은 중매 1순위였지만 사내커플이나 업계커플이 많았다. "저희 대체방 찍었어요"는 '사내결혼'을 뜻하는 은어였다. 현금이 실제로 입출금되지 않고 서류로만 존재하는 '대체전표'를 비유한 것이다. 다른 은행 직원과 결혼할 때는 '교환'이라는 단어를 썼다. 다른 은행과 어음이나 수표를 거래할 때 찍는 교환전표에서 이름을 빌렸다. 은행이 고객에게 돈을 내주고 전표에 찍는 '출납'은 거래처와의 결혼을 빗댄 용어다. B은행 김 모 부장은 "야근이 잦고 오래 자리를 비우기 힘들다보니 티격태격하다 결혼하는 대체방(사내커플)들이 많지만 은행원들은 '교환방'(다른 은행)을 선호한다"며 "금융 업종이 침체되더라도 둘중 하나는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운이 좋으면 차근차근 승진해 둘다 지점장이 되는 '엘리트 대체방' 커플도 더러 있다. 지점장 연봉이 1억5000만원 안팎이란 점을 감안하면 지점장 커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은행은 유아휴직 등 후한 복지제도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C은행 박진수(가명ㆍ35세) 차장은 이제 다섯살난 아들을 보면 사내커플이 되길 잘했다고 느낀다. 박 차장은 "와이프가 육아휴직을 첫애 생기고 2년했는데 끝나고 들어갈때쯤 둘째가 생겨 4년 더 애를 키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젊은 행원 중에는 '임금'과 '복지'를 마다하고 은행을 떠나기도 한다. 단순 반복 업무에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은행원 생활을 5개월 정도 하고 최근 퇴사한 김은정(31세)씨는 "백오피스에서 신용장 발급 업무를 맡았는데 다된 엑셀파일에 빈칸을 채워 전산 처리하고, 도장을 찍고 전송하면 되는 경리 업무였다"고 퇴사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경험 많은 '쎈 언니'들과 친해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야근이 잦고, 감정노동과 실적 스트레스가 심해 고임금을 포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단다.


딱 1시간 칼같이 지켜야 하는 점심시간도 고역이다. 고객 응대를 해야 하는 텔러들은 "점심을 마시고 들어온다"고도 표현한다. 1분이라도 늦으면 출입카드에 찍혀 사유서를 써야 한다. 특히 월급날이 몰린 25일이나 카드값, 공과금 납부일이 몰린 20일, 월말 점심시간은 '비상'이다. 수백명이 은행에 몰리다보니 시재(은행에 수납된 돈)가 전표와 틀리기라도 할까봐 신경이 곤두선다.


은행생활 30년차 D은행 김병구(가명) 부장은 동기들과 술을 마실 때면 "우리는 YES맨의 마지막 세대"라고 토로한다. 입행 초기 고참 주임에게 불려가 얼차려를 받아도 감히 말대꾸를 할 수 없었다. 은행에서 야근하기 일쑤고 통행금지에 걸리면 숙직실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일을 해야 하나"라고 불평한 적은 없었다. 김 부장은 "그때와 비교하면 근무 조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요즘 후배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직장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직장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만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A은행 부행장은 "요즘 젊은 행원들을 보면 개인생활과 자기만족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다"며 "개인의 선호를 반영해 6개월마다 한번씩 자기평가서를 받아 인사에 반영하는 것도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①]25년차 부지점장 '염색하고 돈 세고'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②]'은행의 꽃'은 옛말…'총알받이 지점장'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