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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①]25년차 부지점장 '염색하고 돈 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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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기획, 사람으로 보는 금융사회학①80명 근무했던 대형점포 지금은 15명 '아, 옛날이여'…은행 몸집줄이기 업무 전산화로 직원수 확 줄여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①]25년차 부지점장 '염색하고 돈 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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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화이트칼라'의 아이콘이자 '금메달 직장인'이었다. 나라 곳간이 부실하던 시절 은행원은 경제 개발의 대동맥에 피(자금)를 공급하는 귀한 몸이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으로 대접받았고, 가문의 영광이었다. 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신화가 깨졌다. 초저금리 시대 들어서는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모바일이라는 변화의 파고에도 휘둘린다. 이제는 겨우 '동메달 직장인'일 뿐이라고 그들은 씁쓸해한다. 달라진 위상은 오늘날 금융산업의 척박한 현실을 반영한다. 대한민국에서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그 의미를 5회에 걸쳐 들여다보자.<편집자주>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①]25년차 부지점장 '염색하고 돈 세고'



대리 달면 여직원이 커피에 책상 청소까지..지금은 창구 업무에 하루가 팍팍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은행 창구의 구조는 은행원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은행 업무가 전산화되기 전인 1990년대 은행 창구는 3선(線)이었다. 1선에는 행원이나 계장이 앉아 고객을 맞았다. 대리(지금의 차ㆍ과장급)는 2선에 앉았다. 1선에서 올린 결제건에 도장찍고, 혹여 소비자 민원이 생기면 "제가 책임자입니다"하고 앞으로 나섰다. 3선은 부지점장 자리. 뒤로 갈수록 지위가 높고 책임과 권한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모두가 1선에 전진 배치됐다. 부지점장까지 창구에 앉아서 돈을 세는 일이 허다하다.


37년 은행밥을 먹고 재작년 퇴직한 김상중(가명ㆍ58세)씨는 이같은 변화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설명했다. 겉으로는 은행 업무가 전산화되면서 지시와 통제 기능이 약화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니 선배들이 '플레이어들을 지시하기보다는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효율 극대화를 위해 조직의 몸집을 줄여야 하는 척박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창구 업무는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변했다.


입행 25년차인 A은행 여의도지점 조영훈 부지점장(가명ㆍ45세)은 달라진 세태를 실감한다. 오랜 시간 은행밥을 먹었지만 입행 2년차 계장과 같이 창구에 앉아 있다. 고객한테 '나이 드신 분이 왜 창구에 앉아 있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정기적으로 검게 염색을 한다. 손이 굼떠 돈을 세는 것도 예전만 못하다. 그나마 부지점장도 못 달고 차ㆍ과장으로 퇴직하는 동기들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지만 그래도 옛날 선배들이 마냥 부럽다.


그때는 '대리승진 시험'만 붙으면 '장교'를 달듯이 영예로웠다. 2선으로 물러나기만 하면 여직원이 커피를 타주고 책상을 닦아주는 호강을 누렸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다. 조 부지점장은 "과거 선배들은 업무의 30만 창구 일을 하고 70은 여유롭게 사용했는데 이제는 창구 업무만으로도 벅차다"고 푸념했다.


그때는 예금유치를 잘하는 은행원이 일 잘한다고 평가받았다. 고도성장기엔 기업과 국가가 발전해 공장이 곳곳에 들어서고 투자할 곳은 많았으나 조달해주는 '돈'이 없었다. 은행은 수신을 많이 해서 조달자금을 풍부하게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지금은 굴릴 돈이 넘쳐서 문제다. 저금리 시대에 예ㆍ적금의 공식은 깨졌다.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필연이다.


1980~90년대 은행의 중간점포는 40~50명, 작은 점포도 25~30명이 일했다. 큰 점포는 80명까지도 근무했다.지금은 점포가 커봐야 직원 수는 15명에 불과하다. 중간점포는 10명, 소형점포는 7~8명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금융기관 임직원 수는 2002년 2분기 9만511명에서 꾸준히 늘어 2008년 4분기 10만6633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 꾸준히 감소해 올해 1분기 9만8607명으로 줄었다. A 시중은행 부행장은 "80~90년대에 비해 여ㆍ수신규모는 3~4배 커졌지만 자동화니 모바일이니 해서 인원은 줄었다"며 "결재서류에 도장만 찍어주던 직급들마저 온종일 부산하게 일을 하는 상황은 은행원과 은행의 달라진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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